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바다 Oct 17. 2024

이 풍경 속에서 죽고 싶어

연지동 일기8

한가한 명절을 보내고 있어.

친가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장인 어른도 돌아가시고.

장모님을 뵈러 가야 하는데 아내는 꼼짝을 못하고 누워있네.

연약한 몸으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하는게 버거워 보였는데

몸살이 난 게야.


어린 딸은 제 책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나는, 나를 위해 내가 만든 유튜브 7080 영상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어.

지금은 조영남의 '지금'이 나오는군.

방금까지 정태춘과 박은옥, 이문세와 유익종, 김광석과 최성수 등이 순서없이 왔다갔어.


창밖엔 멋진 몸매의 소나무 몸통이 보이고, 바로 옆에 키큰 팽나무 한그루가 묵묵히 폭염을 견뎌내고 있어.

아침엔 덜 익은 잎 몇장을 떨구기도 하더니, 지금은 폭양에 힘들어 보여.


바로 앞엔 아이들 놀이터가 있는데 지금은 텅 비어있네.

조금 멀리 cgv건물과 아트홀도 보여.

오늘은 구름이 조금 드리웠네.


퇴직하고 나서야 이 풍경들을 흠뻑 즐기고 있네.

풍경에 빠져드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요즘엔 작은 욕망까지 생겼지.

그래서 아내에게 고백했네.


이 풍경을 보면서 죽고 싶어.


내 말년은 요양병원이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다짐하고 있었는데

이 풍경에 젖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꾸 그런 욕망이 생기네.


이 팽나무와 소나무 몸통, 그리고 몸통 위를 부지런히 기어오르는 덩굴식물,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죽고 싶은데...

살면서 정말 드물게 가져보는 소망인데...

잘 될지 모르겠네.


유럽에서는 집에서 죽는 비율이 병원에서 죽는 비율보다 훨씬 높다는데

우리나라에선 병원에서 죽는 비율이 아주 높더라고. 뭣이 문제일까...


방금 김민기의 '친구'가 지나갔는데, 김광석이 나타나 '타는 목마름으로'를 외치네.

여성 호르몬이 많아지는지 요즘엔 눈물도 많아져. 민주주의여 만세.

#풍경#죽음#명절#집#놀이터


      


이전 07화 너무 걱정할 것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