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래바다 Oct 18. 2024

나만 예외일 리가 없다

연지동 일기10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카며느리가 말했다.


"병원에 근무하다보면 사람들이 정말 불만이 많으세요. 분노가 장난이 아니에요. 조금만 진료가 지연돼도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내거든요. 순서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조금이라도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면 버럭 화를 내요. 그런데 암환자라든가 이런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하지 않아요. 정말 차분하고 친절하죠. 상배방을 배려하고 양보도 잘 해요. 참 신기한 일이죠."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평안함을 주기도 한다. 암환자나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좀더 친절할 수 있다면, 아마도 죽음의 절대성이 건네는 평안함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 정신승리 따위는 없다. 포기할 때 우리는 평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교통사고로, 추락사로, 자살로,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심지어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요절하는 경우도 많고, 태어난 지 일년도 안된 아이가 죽기도 한다. 나만 예외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건 나만 취직이 안된다거나 나만 대학에 떨어진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게 내일일 수도 심지어 오늘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여름날의 낙뢰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현실 인식. 이 깨달음을 얻으면 많이 자유로울 것 같다. 욕망도 미움도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이런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아주 많이.






#운명#죽음

이전 09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침입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