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12
아이들에게 고전시가를 가르치다보면 심드렁해질 때가 있어.
그 주제가 늘 비슷하기 때문이지.
그 대표적인 주제는 바로
안빈낙도(安貧樂道)야.
안빈낙도는
'아주 가난하게 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만족하며 사는 삶'을 지칭하는 말이야.
안분지족(安分知足), 단사표음(簞食瓢飮), 단표누항(簞瓢陋巷)도 같은 뜻이지.
안분지족은 제 분수를 지키고 만족함을 안다는 말.
단사표음은 표주박으로 물을 마시고 광주리에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박한 생활을 가리키는 말.
단표누항은 대나무 그릇에 담은 밥과 표주박의 물을 마시며 누추한 거리에 거한다는 뜻.
이 주제와 관련해 공자가 남긴 말 중에 이런 게 있어.
- 나물밥에 물을 마시고 팔을 베고 눕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속에 있으니, 떳떳하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
공자에게는 여러 제자가 있었는데 그중에도 '안연'이라는 제자를 가장 사랑했다고 해.
제자 '안연'에 대해서는 이런 말도 했지.
- 다른 사람들은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먹으며 누추한 시골에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데, 안연은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이제 나이가 환갑조차 훌쩍 넘으니
선조들의 이런 주제가 가슴에 깊이 와닿더군.
많이 가져도 늘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보다
적게 가져도 만족스런 삶을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성공한 삶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문제는 적게 가져도 만족하며 살 수 있는가의 여부인데
이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닌 듯 하이.
그게 수월했다면 우리 선조들이 줄기차게 이런 주제를 다루지 않았을 것 같아.
효도하라든가 공부하라든가 이런 말들이 넘쳐나는 것은 역으로 그런 것들이 잘 실천되지 않는 사회를 반증하는 거라고 볼 수 있지 않겠나.
자본이 밀집돼 있는 대도시에서 안빈낙도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을듯 해.
그나마 이런 주제의 삶을 즐기려면 자본의 밀도가 희미한 시골로 가야하지 않을까 싶어.
대도시로부터 멀리 갈수록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의 수행의 정도에 따라 그 원근을 선택하는 것도 좋을 것 같군.
나의 경우, 젊을 때는 오히려 안빈낙도의 삶을 살거나 그 지향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도력은 약해져 돈의 지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으이.
퇴직하고 만난 옛동료들에게 국밥 한 그릇 사는데도 지갑의 두께가 걱정된다면
어찌 행복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피와 살을 나눈 노년의 형제들과 만나 국수 한 그릇 맘 편히 나눌 수 없다면 이 어찌 만족하는 삶이라 할 수 있겠는가.
#안빈낙도#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