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10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조카며느리가 말했다.
"병원에 근무하다보면 사람들이 정말 불만이 많으세요. 분노가 장난이 아니에요. 조금만 진료가 지연돼도 화를 내고 큰소리를 내거든요. 순서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조금이라도 손해 본 듯한 느낌이 들면 버럭 화를 내요. 그런데 암환자라든가 이런 중병에 걸린 사람들은 그렇게 분노하지 않아요. 정말 차분하고 친절하죠. 상배방을 배려하고 양보도 잘 해요. 참 신기한 일이죠."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평안함을 주기도 한다. 암환자나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좀더 친절할 수 있다면, 아마도 죽음의 절대성이 건네는 평안함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을 때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죽음 앞에서 정신승리 따위는 없다. 포기할 때 우리는 평안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늘도 교통사고로, 추락사로, 자살로,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심지어 인류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요절하는 경우도 많고, 태어난 지 일년도 안된 아이가 죽기도 한다. 나만 예외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이건 나만 취직이 안된다거나 나만 대학에 떨어진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 그게 내일일 수도 심지어 오늘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여름날의 낙뢰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현실 인식. 이 깨달음을 얻으면 많이 자유로울 것 같다. 욕망도 미움도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이런 준비조차 하지 않고 있다가 어느 날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하면 많이 슬플 것 같다. 아주 많이.
#운명#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