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동 일기25
고등학교 때
꿈이 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은행장이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유를 물었다.
은행장은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은 당연히 최고 권력과 명예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들엔 허위가 담겨있다. 고등학생이 그 정도 수준의 대답을 하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아마도 주변 사람들의 허황되고 뻔한 꿈들에 대한 조소(嘲笑)도 담겼을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가 되고 싶다는 현실적인 욕망을 가진 것은 대학생 때였던 것 같다.
'교사가 되어 인적 드문 시골 학교 교무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교무실 가까이에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내 꿈의 절반은 성취된 셈이다.
삼십여년 시골의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다만 학생들은 너무 많았고 교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는 쉽지 않았다.
커다란 느티나무도 없었다.
꿈의 형식은 이루어졌으나 꿈의 내용은 달성되지 못했다.
다르게 표현하면, 꿈의 절반은 성취되고 나머지 반은 성취되지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꿈처럼 애매하게 쓰이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희망사항인지 직업인지 욕망인지 의지인지 그 개념이 명쾌하지 않다.
꿈은 때로 희망이지만 때로 허상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꿈이 이루어졌다고 꼭 성공한 삶도 아니다.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꼭 실패한 삶도 아니다.
꿈의 성취에 대한 나의 평가와 타인의 평가도 다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를 여기에 적용해도 좋을 것이다.
꿈의 절반이 성취되어 시골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꿈의 절반이 성취되지 않아 시골학교에서 많은 책을 읽거나 많은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재미있었고
인생의 대부분은 그 일을 위해 썼다.
내 꿈은 이루어졌을까, 그렇지 못했을까.
#꿈#희망#이상#비현실#성공#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