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 순간

연지동 일기52

by 모래바다

며칠 전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 공항 수하물 인도장에서 우리 마음은 조급했다.

빨리 수하물을 받아야 시간에 맞춰 리무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도 우리는 5시간을 더 이동해야 했다.

유유히 위용을 부리며 돌아나오는 짐들에 모두의 눈이 집중됐다.

기다리는 일은 언제나 초조하지만, 시간 제약이 있는 기다림은 더욱 그랬다.


요즘 딸아이는 초경 이야기를 자주 한다.

주변 아이들은 대부분 생리를 하는데 자기는 소식이 없으니 은근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내가 말했다.

-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른다. 아니, 오늘 일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 생리를 시작할 수도 있고, 내일 시작할 수도 있다. 항상 역사는 '어느날' 이루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내 노력의 범주를 벗어난 일은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잘 기다리는 것'이다. 희망이란 '잘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싶다. 부정적이거나 절망적인 생각에 가까이 가면 기다리는 일은 더욱 가혹한 형벌이 될 것이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기다릴 때도 그랬다. 우리 짐은 나의 의지나 노력에 상관없이 한 순간 다가왔다. 우리의 간절함과도 무관했다. 비행기에서 내려진 짐이 저만의 시스템을 완성한 뒤 아무 때나 컨베이어벨트에 실려 우리에게 다가왔다.


청소년 시절, 뭔가 외롭고 그립던 시절, 한 여학생에게서 손편지와 천마리 학을 받았다.

그녀에게서 손편지와 학이 출발할 때, 나는 여전히 외롭고 그리웠다.

그녀가 천마리학을 접고 입는 동안에도, 나는 여전히 외롭고 그리웠다.

결국 우리집 대문에 예쁜 편지봉투와 화려한 포장지의 종이학들이 도착했을 때 비로소, 내 마음 한 구석은 어떤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것이 오는 동안' 나는 기쁨을 알 수 없었다. 기쁨은 우체부가 우리집 대문을 두드리는 순간 나에게로 왔다.



우리의 희망은 출발지와 도착지의 중간에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출발지에서 출발했다고 믿고,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고 여기거나 기대하는 것, 그것이 희망이 아닐까.

아직 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내가 알 수도 없고, 내 노력이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이 세상의 바람 속을 살아가는 우리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와 노크 소리가 곧 다가올 것을 기대하며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