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가 울어도 딱정벌레는 놀라지 않는다

연지동 일기55

by 모래바다

<떡갈나무 바라보기>(주디스 콜, 허버트 콜 지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런데도 그 책에서 보았던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에스토니아 출신의 생리학자 야곱 폰 웩스쿨이었다.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적 환경(Welt) 이라는 개념으로는 다양한 동물들이 경험하는 세계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움벨트라는 개념을 고안하게 되었는데 이는 이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획일적으로 공유하는 경험이 아니라 개개 생명체가 갖고 있는 고유의 환경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개미와 벌과 인간의 움벨트는 서로 다르다. 개미 세계에서 활짝 핀 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어쩌면 먹이를 구하는데 피해 다녀야 할 장애물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벌의 세계는 다르다. 벌은 개미가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 꽃에서 먹이를 구한다. 벌은 꽃가루가 풍부한 꽃을 찾아 들판을 헤매며 본능적으로 꿀사냥을 한다. 인간의 세계는 또 다르다. 인간에게 꽃은 장애물이나 먹이가 아니라 감상의 대상이다. 인간들은 꽃의 모양이나 현란한 색깔에서 미적 만족감을 느낀다. 이렇듯 우리는 그동안 당연히 인간의 입장에서 꽃을 보아 왔지만 그것이 동식물의 세계에서 꼭 당연한 것은 아니다. 생물들은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다른 세계가 움벨트다.




나무 한 그루에도 수많은 움벨트가 존대한다. 부엉이의 움벨트, 까마귀의 움벨트, 딱따구리의 움벨트, 여우의 움벨트, 딱정벌레의 움벨트 등등. 까마귀 울음 소리에 딱정벌레는 놀라지 않으며 부엉이의 커다란 눈에 여우는 별 경계의 대상이 아니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아무리 시끄럽게 쪼아대도 그 밑을 기어 다니는 개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일을 한다. 그 움벨트가 서로 겹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신비다. 세계의 모든 생명체가 획일화된 환경(Welt)에서 산다면 그들은 아마도 신경성 질환으로 생명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땅속에서 굼벵이로 15년을 살다가 밖으로 나온 매미가 채 한 달을 살지 못하고 죽는다는 사실에 의아심을 품었던 적이 있을 것이다. 1-2년을 물 속에서 살다가 성충이 된 후, 채 이 삼일을 살지 못하고 죽는 하루살이는 또 어떤가. 하지만 이들의 시계는 인간의 시계와 다르다. 그들은 그들의 움벨트에 살고 있으므로 인간의 눈으로 그들의 시간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움벨트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보면, 인간들의 움벨트 즉 시공간이 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들은 받아들이기 싫겠지만, 인간의 세계는 수많은 세계 중 하나일 뿐이며 또 그리 큰 영역이 아닌 것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의 시공간이 오직 인간만의 것인 듯 모든 생태계를 재편하려는 인간의 오만은 과감히 멈춰져야 한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자본가들의 명분 즉 발전이나 건설 같은 구실에 더 이상 속아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서로 다른 움벨트에 대한 이해이며 협력이다. 다른 동물들의 움벨트에 대한 존중이 시작될 때 비로소 인간의 움벨트도 안전하게 유지될 것이다. 이는 지구 생태계의 문제이기에 앞서 인간 생존의 문제이다.




#움벨트#인간중심#떡갈나무바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