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그렇다
돌아 돌아서라도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
며칠 전 네이버로 상담 예약이 들어왔다.
바쁜 와중이라 예약 가능 시간을 수정해놓지 못했는데,
하필 예약이 불가능한 시간에 상담 예약이 되어 있었다.
메신저로 변경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변경 예약이 들어왔고 또다시 불가능한 시간이었다.
메신저 내용을 확인하고 예약을 변경한 줄 알고,
죄송한 마음을 담아 상담 가능한 시간을 안내하고 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답은 오지 않았다.
가끔 새벽에 상담을 예약하는 분들 중에는
순간적인 감정으로 상담을 신청했다가 취소하는 경우가 있어,
그러려니 하고 잊었다.
며칠 뒤 상담 중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거절 메시지를 보내자, “센터 동 호수”를 묻는 문자가 왔다.
보통 주차를 위해 입차를 하는 경우이다.
객원 선생님께 상담 예약이 있었기에 상담 시간이 바뀌었나 싶었다.
잠시 후, 엄마와 딸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센터로 들어왔고,
나는 순간 당황했다.
객원 선생님의 내담자는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누구세요?”
“상담 예약한 OOO입니다.”
아, 바로 답이 없던 예약자였다.
그분은 아무런 연락 없이, 그 시간에 맞춰 그대로 찾아오신 것이었다.
이미 다른 상담이 진행 중이어서 상담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센터는 사전 예약제이며, 상담료 입금이 확인되어야 예약이 확정된다.
그 내용은 예약 시점에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
서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짧게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내가 상담 중임을 알리자 그분은 “다시 연락드리겠다”라고 말하며 조용히 돌아갔다.
속으로 ‘다른 곳에 가시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이 끝난 뒤, 그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처음에 내가 제안했던 변경 가능한 시간으로 상담이 가능한지를 묻는 친절한 메시지였다.
인연이 그렇다
처음 예약이 들어왔을 때 나는 객원 선생님과 연결하려 했었다.
그래서 객원 선생님이 가능한 시간을 안내했었다.
하지만 그분은 돌아 돌아 결국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중국어 회화를 배우기 위해 ‘전화 중국어’를 신청했던 적이 있었다.
검색을 통해 어렵게 찾은 선생님은, 중국에서 오래 살다가 결혼하고 한국으로 온 여자분이었다.
몇 차례 수업 후 그 선생님은 나를 실제로 만나고 싶다고 했다.
특이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수업이었는데
나와 첫 통화 후 밝은 내 목소리를 듣고 내가 좋아졌단다.
그리고 수업을 하면서 만나고 싶어 졌단다.
거부감 없이 만나게 되었고 대화가 잘 통해 곧 친구가 되었다.
나를 많이 좋아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덕분에 수업은 중국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흘러가면서
중국어 실력은 늘지 못했지만 뜻깊은 인연이 시작되었다.
이 친구의 만남을 계기로 또 다른 인연들이 이어졌다.
모두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의 인연은 둘 사이의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예상치 못한 사건 — 천안함 사건-을 두고 생각이 엇갈리면서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나와의 관계에서 쌓인 불만을 인신공격으로 쏟아냈고,
결국 우리는 멀어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었다.
몇 년 후, 중국으로 돌아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를 놓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관계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예전 같은 가까운 관계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피천득은 그의 수필 『인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금방 나는 금방 떠나고 싶지 않아서 눈에 뜨이지 않게 그 애를 바라보았다.
인연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와 시간이 정해주는 것이다.
인연은 대체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다가오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따뜻함을 안긴다.”
인연이 그렇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은
때로는 한 번의 전화, 한 번의 방문, 한 번의 우연한 메시지로 시작된다.
처음엔 어긋난 것처럼 보였던 인연도
돌고 돌아 결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어 있다.
현재 나에게 찾아와 있는 인연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변할지,
또 어떤 새 인연을 불러올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돌아 돌아서라도 만나야 할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