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관계, 심리적 외상

by 민경수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의 해석은 바꿀 수 있다.




"위대한 사람일수록 더 큰 슬픔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통찰이 깊고 마음이 큰 사람에게는 상처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_ 도스토옙스키

누구에게나 상처는 있다.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지만, 어떤 상처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심리적 외상(trauma)라고 부른다. 외상은 사건의 기억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랜 시간 후유증이 되어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했던 사람의 한마디는 새로운 만남에 장애가 되고, 사소한 무심함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키운다.


상담을 하다 보면 두 종류의 내담자를 만나게 된다. 과거 가족과의 관계로부터의 상처로 인해 가족에 대한 원망감을 드러내는 내담자, 자신의 상처의 원인을 모른 채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는 내담자.

이들의 공통점은 성장기 가족 관계에서 학습한 감정 표현 방식, 관계의 방식이 성인이 된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비난이나 방임을 경험하게 되면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 믿음이 생기고,

연애 관계나 친구관계, 그리고 직장에서의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고 존재를 증명하려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상대의 연락이 늦거나 반응이 없으면 자신을 버리려는 신호로 해석하고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소외될 수도 있다는 불안에 친밀한 관계를 피하거나 과하게 집착하게 된다.


차라리 혼자되기를 선택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애착 이론은 이 패턴을 유형으로 분리해 설명하고 있다. 안정 애착은 “기댈 수 있고, 혼자서도 선다”는 감각이다. 반면 불안 애착은 버려짐에 대한 불안으로 확인 행동을 반복하고, 회피 애착은 관계에서 다치지 않으려 마음을 닫는다.


정서적 돌봄이 필요한 성장기 시기에 충분한 정서적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안정적 애착이 형성되기 어렵다. 관계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하지 않으면 불편한 관계는 반복될 수 있다.


관계에 대한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현재의 행동을 고치려 하기보다는 성장기 가족과의 관계경험, 그 관계에서 자신이 어떠한 감정을 경험했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현재의 해석은 바꿀 수 있다.


나는 상담 중에 내담자에게 과거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과거는 지난 일이기에 바꿀 수 없기에 중요하지 않지만 그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는 미래의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계로 인한 상처가 반복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를 아는 게 출발점이다.


관계의 외상은 감춰야 할 결함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지키려던 방식이었다. 치유의 첫걸음은 없는 척 덮는 일이 아니라 흔적을 이해하는 일이다. 우리는 관계로 인해 상처를 받지만, 관계에서 치유되기도 한다.

상처에서의 회복은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나를 다시 믿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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