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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업번역가 Nov 16. 2021

아무도 모르게 내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크레딧이 무서운 번역가

내가 번역한 작품이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개되는 날이면 괜히 마음이 설렌다. 영상을 열어 재생 바를 최대한 끝쪽으로 돌려본다.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검은 화면에 등장한다. 재생 바의 붉은색 점이 끝을 향해 달려가다 결국 휴대폰의 제일 오른쪽에 당도했을 때까지 내가 아는 그 이름 - 자막: 나 - 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다고 나를 위안하지만, 괜히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도장 깨기 실패.


엔딩 크레딧. 외래어 표기법으로는 크레디트가 올바른 말이다. 검은 화면에 이름이 적힐 뿐인 이것을 난 참 좋아한다. 모 프랜차이즈가 관객들의 엉덩이를 붙잡아 두려고 '쿠키'를 쥐여주기 전부터 가능하다면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고 오려고 했다.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메인 유닛은 LA에 있었고, 두 번째 유닛은 런던에 있었구나. 두 개의 촬영 팀으로 찍은 거구나. 저 배우에겐 액션 스턴트 더블이 있었구나. 해상 안전요원이 저렇게나 많았구나.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각양각색의 자리에서 노력한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 검은 화면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했고,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와 영화 업계로 갔더란다. 과몰입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영화 업계에서 처음 맡았던 영화의 크레딧.xlsx 파일에는 내 이름이 없었다. 포스트 프로덕션도 거의 마무리되어 개봉을 앞둔 상태에서 입사한 거였기에 크게 섭섭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바로 이어서 하고 있던 영화 크레딧에 이름이 들어간 덕분에 섭섭할 수도 있었던 마음을 빨리 털어낸 걸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영화의 VIP 시사회 때 티켓을 받아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크레딧에 들어간 내 이름을 봤다. 검은 화면 속에서 내 이름이 등장하던 그 짧은 순간, 만들지도 않았던 '인생에서 꼭 해 볼 일' 체크리스트의 네모 칸에 체크가 그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 해냈다. 주변에서도 내 이름이 나오는 부분을 찍어 응원의 메시지와 함께 보내줬다. 이 자리를 빌려 그때 못 전한 말을 해본다. 여러분, 그것은 정말이지... 저작권 위반... 영화 상영 중에는 화면을 촬영하지 말아 주세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아직 살면서 해야 할 게 많아서 - 한스 짐머 내한공연도 봐야 하고, 올랜도 디즈니랜드도 가봐야 하고 -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몇 편의 영화에 이름을 올리고 나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새로운 아쉬움이 고개를 쳐들었다. 해외 영화에도 이름을 남기고 싶다. 하지만 해외 영화에는 이름을 남길 수 없다. 해외 영화사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아, 해외 영화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네. 바로 번역가 크레딧.


내가 영상 번역 업계에 입문한 계기는 이랬다. 국내 영화에 이름을 올렸으니 해외 영화에도 이름을 올리고 싶어서. 운이 좋아 영상 번역 입문 1년 차에 바로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한 드라마의 마지막에 '자막: 나'를 띄우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또 한 번 '인생에서 꼭 해 볼 일' 체크리스트의 네모 칸이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푸시식. 크레딧에 대한 내 관심은 순식간에 식어버렸다. 이제는 납품할 때 크레딧을 적지도 않는다. 이미 올렸으니까 됐다고 나를 다독이지만 실은 무서워서 그렇다.


번역가 크레딧. 그 어떤 한글 이름도 뜨지 않는 - 한국어 이름과는 다르다. 해외 영화를 보면 타국에서 일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이름이 꽤 많다 - 영화와 드라마에서 혼자 한글로 이름 석 자 또는 넉 자를 띄우는 번역가 크레딧은 얼마나 자랑스러우며 또 부담스러운가. 어쩔 땐 배우들보다도 먼저 뜨는 이름. 자랑스러울 법도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그냥 감추고 싶단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누가 내 이름을 거론하며 내 번역을 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난다. 그럼 번역을 더 잘하면 되잖아?라고 하겠지만, 세상에 관객을 100% 만족시키는 번역이란 없다. 누구는 직역이라며 아쉬워하고 다른 누구는 의역이 심하다며 아쉬워한다. 같은 번역을 두고 누구는 초월 번역이라고 칭찬하지만 누구는 수준 낮은 번역가를 데려와 번역해서 이 모양이라고 한탄한다. 정작 내 번역은 논란에 오른 적조차 없지만, 혹시나 이런 상황에 직면할까 두려워 번역가 크레딧을 적는 부분은 항상 지워버렸다. 극장 개봉작에는 크레딧을 적을 엄두조차 못 냈다. 안 냈다.


그래도 새로운 스트리밍 서비스의 작품을 하게 되면 한 번씩 적어보고는 했다. 그런데 나름 적어냈는데 안 보이면 그건 또 그거대로 속상하더라. 아니, 언제는 크레딧 올라가는 거 무섭다고 안 쓰더니, 또 이번엔 크레딧 안 올라가서 속상하다고? 뭐 이런 게 다 있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마음에 누구나 순천만 갈대 습지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 내 이름을 밝히는 건 두려워 크레딧은 남기고 싶지 않지만, 수천, 수만 개의 영상물이 올라와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서버의 어딘가에 내 이름을 살짝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단 말이죠. 누구도 내 이름을 눈여겨보지 않을, 그런 곳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 이렇게 한없이 작아질 때면 생각나는 일화.


번역의 질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 오르내리던 어느 해, 해외 배급사 작품의 개봉을 준비하던 중 번역가 크레딧 이야기가 나왔다. 번역가는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 달라고 했고, 우리는 고민이 됐다. 당시는 번역이 정말 엄청난 화두였고 개봉하는 영화마다 번역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영화보다 번역 이야기가 더 화제이던 때였으니, 평소라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결국 크레딧은 올라갔다. 하지만 번역 논란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 가뜩이나 번역에 대해 말이 많던 그때, 이름을 올려달라고 말하며 번역가는 어떤 각오를 했을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나만큼 무서웠지만 크레딧이라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고 말할 땐 번역물에 대한 자신감과 어떤 평가도 감당하겠다는 책임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용기를 낸 덕분에 그 번역가는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자신의 이름을 마주 했겠지.


해외 영화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번역가 크레딧. 그 자리를 누군가와 나누지 않는 한, 모든 책임과 논란은 유일한 이름인 번역가의 몫이 된다. 용기를 내면 내 이름은 검은 화면 위에 자막으로 등장하지만, 나처럼 숨어버리면 아무도 모른다. 단톡방에서 너도 번역한다면서 난 왜 네 이름을 한 번도 못 봤지?라는 질문이나 듣는 거다. 그건 용기의 자리라서 그래. 아직 나는 남들은 모를 어딘가에만 내 이름을 작게 남기는 겁쟁이 번역가이긴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번역을 시작하며 꿈꾼 순간이 스크린에서 실현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근데 너무 큰 영화는 아니었으면.




사족을 덧붙이자면, 번역가의 이름이 뜨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최근에는 보안이나 내부 이슈로 아예 번역가 크레딧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사실 번역가 크레딧이란 것 자체가 영상에 올라가는 게 아니고 자막 파일에 올라가는 것이어서, 극장 개봉을 마치고 서비스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자막을 수정하게 되면 삭제되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러니까 저처럼 괜스레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게 번역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데에는 도움이 될 거예요.


@Erik Witsoe,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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