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by 심시현

이상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지탄받을 일은 아니지만 권유할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그다지 떳떳하지도 않은, 때로는 합법과 불법, 도덕과 비양심의 중간에서 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그 이력을 갖고 있다고 들었지만,등단을 한 작가가 스스로 꺼내놓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필작가'는 이름에서조차 그림자와 슬픔이 베어 나온다.



하루 종일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며 정말 많은 글을 썼다.

내 글은 높은 분의 입을 통해 뉴스에 나오기도 하고, 모든 사람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의 홈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어떤 글은 가문을 기리는 비문에 새겨지기도 했다.

나는 내 이름이 빠진 '내 글'을 보면서 주인의 몸에서 빠져나와 기증된 정자를 떠올렸다.

제목 아래 내 이름을 쓰고, 겉봉에도 또박또박 내 이름 석 자를 쓴 글을 잡지사에 보낸 것은 이름 없는 글에 대한 염증이 이유였던 것 같다.



그 작은 글이 당선이 되면서, 앞의 두 글자를 뺀 그냥 ‘작가’라는 이름이 기쁨과 위로로 다가왔다.

‘수필가’는 조금 뜬금없기는 하지만, 작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고, 작가의 아류가 되어버린 듯한 서글픔을 어느 정도 희석시켜 주는 것이기도 해서, 내가 이양하와 피천득 또는 베이컨의 수필집을 들춰보면서 제대로 된 글을 써 보리라 다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문인’들과 ‘교수님’들 때로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작가로서의 치열함, 세상을 향한 품위...그런 기대나 예상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만남이 이어질수록 기쁨은 사라졌다.

문인 교수님은 빼고, 시간 많은 한량 사업가 우아한 사모님으로 대신해도 별반 틀릴 게 없었다.

호텔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 초대장과 선물 받은 수필집들이 자꾸 쌓여갔다.

기대가 약간의 환멸로 바뀌면서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었고, 어느 순간 발길이 끊어졌다.

아쉬움 하나 없는 나름의 결별이었다.



그 사이 나의 글은 문학지에 가끔씩 얼굴을 내밀었고, 받았다고 말하기 민망한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수필이 가진 문학적 한계 때문인지, 그것으로 접한 세계가 너무 옹색한 때문인지 나는 나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나아갈 지점 자체에 조차 회의가 들었다.

그 회의와 함께 감동도 열정도 기대감도 사라졌다.


사라지는 게 있으면 자리를 채우는 것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며 나이를 먹는 건 몹시 힘든 일이었다.

지천명을 넘기면 삶의 갈등은 평정되고 그 평정심이 마음을 가득 채울 줄 알았는데, 전혀 였다.

마음에는 늘 풍랑이 일고 빈 자리는 시나브로 커져갔다.



손목이 아프고, 자괴감이 들고 때로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기도 했지만 글을 쓸 때가 가장 갈등 없이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다시 가져오고 싶다는 간절함이 아침처럼 나를 찾아왔다.

아침은 내 안의 두려움과 환멸과 불안함을 제쳐버릴 만큼 넉넉해서... 나는 그리운 활자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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