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희

by 심시현



글은 지극히 형이하학적이다. 통속적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기서 정신의 가치니 내면의 아름다음이니 하는 것을 거론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2,3년 전부터였던 것 같다.

TV에 장미희가 나오면 눈길이 갔다. 그녀는 드라마에서든 광고에서든 대체로 화려하게 나온다. 나 여기 있다를 외치는 듯한 큼지막한 액세서리, 반짝이 스커트, 컬러풀한 하이힐, 물론 주름 하나 없는 얼굴과 잘 먹은 화장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들이나 딸아이에게 장미희를 아냐고 물으면 대부분 모른다고 대답했다. 배우라고 하면 그런 배우도 있냐고 하고 말았다. 하긴 나도 그 나이 때는 몰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젊었으니까.


그런데 왜 새삼, 평범치 않은 삶이 가십거리로 들려올 때도 시선이 가지 않던 그녀가 눈에 들어오는 걸까....?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5,60대 여자는 그저 중늙은이, 어떤 매력도 찾을 수 없는 무색무취의 아줌마 혹은 할머니였다. 몸이 늙는 거지 마음은 아니야- 라는 푼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 마음은10대 20대라는 건가?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랬었다.

나는 그 감동 없는 나이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나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시인의 말처럼 ‘나이 듦은 부끄러운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음을 세상은 자꾸 깨우쳐 준다. 세상의 온갖 철학적이고 현학적이고 심지어 낭만적인 말로 포장을 해도 나이 듦은 추락하는 것이고 저무는 것이고 시드는 것이다.


장미희를, 그 앞에서 보았다.

그녀는 날카로운 창을 들고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적을 무찌르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투사다.


붉은 립스틱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얼굴과 커다란 목걸이, 잘 소화해 내는 화려한 옷, 늘 주인공인 기세 앞에서 추락하고 저물고 시드는 것들은 저만큼 물러나고 만다.

당당히 차지한 젊음으로

그녀는 나이 많은 여자를 향한 사회의 시선까지 바꿔놓는다, 마치 혁명가처럼.

고맙게도, 그녀가 연장시켜놓은 젊음의 수명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아무 공로 없는 범녀에게까지 허용되어서 고민하는 여자들은 청춘의 도전과 자신감과 가능성을 다시 만난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여자가 경험이 일천한 분야에 도전해서 새내기처럼 배울 때, 그녀의 학습능력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녀는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을 하기 위하여 이력서를 낼 수도 있다. 이력서 생년월일 난에 있는 숫자를 보고 얼굴을 힐끗 쳐다보는 것은 모욕적인 행위다. 그녀의 능력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찢어진 청바지나 비즈가 현란한 원피스를 입어도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지 않기 바란다. 늙음을 유예시킨 그녀는 여전히 젊기 때문이다.


늘 아름다운 장미희에게 그리고 젊은,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그녀들의 투쟁과 성취에 박수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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