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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Oct 27. 2020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도 하나님을 전할 수 있을까? 건강을 잃은 사람은, 혹은 실패한 자식을 둔 사람은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복음은 그 자체로 살아있고 힘을 갖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그것은 꼭 전하는 이의 입술을 통해야만 한다.

세상은 말씀이 아니라 전언자를 본다. 나는 어떤 전언자일까?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더 굳게 하는 전언자일까, 아니면 하나님을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전언자일까...?


복음 앞에서 주춤거리는 것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가 복음을 전하면 듣는 이는 곧바로 반문할 것 같다. 당신의 가난도 구제 못하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까? 또는 내 구원 말고 당신이 가난에서 벗어날 길이나 구하시지.

건강을 잃은 중환자가 전하는 하나님은 비만인 사람이 권하는 다이어트만큼이나 공허할 것 같다. 실패한 자식을 둔 사람이 입술을 열면 하나님은 그 즉시 비웃음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억대 연봉을 주시고 강철 같은 건강을 주시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사회적 지위를 주셨다면 나는 정말 잘 전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설득력을 갖나!      




간증집회였다. P는 3명의 간증자 중 한 이었다.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연단으로 올라온 P는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았지만 걱정의 흔적이 설핏설핏 비쳤다.

P는 크론병을 앓고 있었다. 결혼 초 발병되어 계속 진행 중이라고 했다. P는 그 병을 앓으면서 겪어야 하는 깊은 통증과 때로는 배변 주머니를 하고 있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증상이 심해질 때면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세요? 절규한다고 했다.      


집회를 마친 후 P는 목사님의 권유로 간증을 하긴 했지만, 자신은 하기 싫었노라 했다.   

   

간증에도 플롯이 있다.

평범한 삶, 환란, 하나님의 도우심과 해결, 기쁨과 헌신이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환란이 험할수록, 도우심과 해결이 평범하지 않을수록 간증은 드라마틱해지고 듣는 이들의 감동도 더해진다.

간증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도우심과 해결의 과정까지가 완료형이라는 것이다. 간증자는 늘 체험 완료된 은혜를 증거 한다.      


P의 간증은 이런 플롯에 해당되지 않았다. P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병이 완치된 게 아니어서.... 완치받지도 못했는데, 간증자로 서야 하는 게 불편했다고 약간 곤혹스러운 얼굴로 털어놓았다.

P는 여전히 환란 중이었다.      


그럼에도, 착한 남편과 좋은 의사를 만나게 해 주신 것과 오늘 하루 살아가고 있음이 감사하다는 P의 간증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긴 여운을 남겼다.

여전히 크론병이 주는 고통을 앓고있는 P가 받는 은혜는 완료형이 아니었다. 진행 중인 고통과 은혜, P의 신앙고백의 자리는 그곳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P의 사랑과 겸손,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이 내 것처럼 느껴졌다.




믿음의 부피는 지극히 역설적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연정을 품는 것만큼이나 수월한 일이다. 넘어야 할 장애물이 없다.

하지만 삶의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은, 원망, 후회, 자탄, 분노.. 같은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자기 부인의 높은 장애물을 넘어야만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지난 가난한 이의 고백에 불순물이 끼어있을 리 없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가난한 이는, 복음을 설명하는 환자복을 입은 파리한 얼굴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완벽한 증거다.      


가난한 이는 믿음을 고백해야 한다.

돌아오는 것이 비난과 조롱과 경멸일지라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증거는 훼손되지 않는다.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가난한 사랑 노래. 신경림

   서 왜 모르겠는가/것을.                                                                  시인은 가난하기 때문에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리움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노래했지만,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은 가난하기 때문에 가장 적나라하게 하나님을 증거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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