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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Aug 19. 2021

사랑하는 조카, 규에게

- 불신자의 멍에를 매지 말라.

               

네가 남자 친구가 생겼고, 잘 만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지가 벌써 1년이 돼가는 것 같다. 그 친구는 성품 좋고 능력도 출중한, 나무랄 데 없는 남자로 보였다, 그래서 이모도 네가 그 친구와 잘 만나다 좋은 결실을 맺기를 바랐는데, 엊그제 들은 말은 너무 뜻밖이어서 당황스럽고 안타까웠다.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가정이나 그렇지 않은 가정이나 장성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 자녀의 결혼은 가장 큰 관심사이고 그 기대나 바람 역시 다를 게 없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만큼 삶에서 중요한 일이고, 중요한 만큼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가정은 여기에 하나의 어려움이 더 추가되는구나.      


서로를 사랑하고, 성품 좋고 능력도 좋다면,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상적 배우자겠지만, 너도 알다시피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믿음’이라는 항목을 추가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사실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전제라 할 수 있을 거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고, 기독교인이라면 그 말씀에 따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1년에 제사가 스무 번이라는 네 남자 친구의 집안, 불사에 열심을 내었고 부모님은 지금도 그 열심을 지속하고 있다는 가정.

- 결혼을 생각할 사이가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처음부터 좀 알아보고 만나지 그랬니?라는 내 말에 대한 너의 대답은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이모도 달리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하긴 어떤 아이들이 맞선도 아닌 만남에서 윗대부터 시작하는 호구조사를 할 수 있겠니!    

  

삶에서 복병은 늘 그런 곳에 있단다. 깨달음은 늘 허를 찔리고 난 후에 찾아오더라.     

 

네 아버지가 그 친구 집안 상황을 듣고 더 이상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친구가 네가 제사를 드릴 일은 없고, 교회도 다니라고 했다지만... 그것이 쉽지 않음을 혹은 아예 불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네가 마음 아플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알고 있겠지만, 적지 않은 기독교인이 너와 비슷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교회 안에서 청년들의 기도제목을 보면 적지 않은 수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라 하더구나. 장년부에서도 기도제목을 나누다 보면 자녀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길 원한다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기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은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크고 간절한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 청년부는 남자아이들보다 여자아이들이 많은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결혼 적령기의 기독청년 전체를 보더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많은 게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여러 가지 상황과 조건을 더하다 보면 결혼 상대자의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이런  상황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심하게 적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다.        

 

교회 안에서 혼사가 이루어지면 모두가 기뻐하고 축복해주는 이유도 믿음의 커플로 맺어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란다.    

   

말씀이 너무 무거워서일까? 사람들은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만들어 놨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와 배우자 집안을 전도하리라!! 또는 결혼을 하면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등. 그 친구도 비슷한 약속을 네게 했을 거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 길은 쉽게 들어서서는 안 되는 길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출애굽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언약을 세우시면서 이제 들어가는 땅의 백성들과 혼인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 이유는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혀놓으셨다.  

    

이스라엘의 정복전쟁에서는 혼인 금지 정도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과의 전쟁에서는 남자를 다 죽이라 하셨고, 바산 왕 옥과의 전쟁에서는 남녀와 유아까지 모두 멸망시키라 하신다. 요단강 서쪽 지역인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족속 등과의 전쟁에서도 역시 생명 있는 자를 모두 진멸하라고 하신다. 여리고 전쟁에서는 살육의 대상이 마침내 사람을 너머 생명 있는 모든 가축과 짐승에 까지 이른다.  

    

인간적 관점에서는 너무나 잔인한 살육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구속사’를 이루어야 할 이스라엘의 신앙적 순수성은 지켜졌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정복한 민족과 섞여 그들을 교화하거나 회개시킬 가능성이 없음을, 아니 그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임을 알고 계셨겠지.


이스라엘이 욕심에 눈이 멀어 죽여야 할 대상을 죽이지 않거나 전리품으로 취했을 때, 그 결과는 늘 ‘이스라엘의 타락’이었다.

    

결혼에서 구약의 정복전쟁까지 나아간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하나님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기는 것은, 믿는 자가 구별되고 타락하지 않는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임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너는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고백한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이모에게 그것은 늘 선택이었단다. 선택에는 갈등이 따르고 외면하거나 포기해야 하는 대상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란다. 때로는 그 아픔이 죽음과도 같이 깊고 치명적일 때도 있고, 후회와 자책이 가시덤불이 되어 오래도록 찌르고 생채기를 낼 때도 있지만, 그것을 견디는 것 또한 선택이었단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기꺼이 그 길을 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자 고백이더라.

      

제사를 스무 번이나 드린다는 자체나, 그로 인해 그 집안 며느리로 들어갔을 때 치러야 할 노동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제사를 스무 번이나 드리는 집안에 있을 견고한 우상숭배의 뿌리란다.


이런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이나 세상으로부터는 비난의 대상이 되겠지만, 크리스천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감내하며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다.    

  

네 사랑이 너무 슬프지만, 하나님을 벗어난 사랑은 네게 가혹한 청구서를 내밀 것이다. 그런 청구 앞에서 사랑은 허망하게 금이 가고 무너진다는 것은 인생을 더 산 사람들의 경험칙이다.  

하나님은 네가 그런 청구서를 받길 원하지 않으시고, 너를 사랑하는 가족 모두도 같은 마음일 수밖에 없구나.       


크게 내색을 안 하지만, 너도 그 친구도 마음이 많이 아프고 슬플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이모도 참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너는 총명한 아이니 바르고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슬픔 가운데 너를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너도 꼭 이 사실을 믿기 바란다.  

     

무자비한 폭력 같던 더위도 이제 조금씩 물러나는 것 같구나. 이 여름이 지나면 너는 조금 더 성숙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이 너를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너를 위해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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