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33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을 이 땅에 계셨고, 그나마 공생애라고 불리는 사역의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수는 그 시간을 부족하다고 여기시지 않은 듯하다. 자신이 떠난 뒤를 위해 준비해 둔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장 8절
가룟 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의 말에 순종해 증인의 삶을 살았고, 복음은 그런 삶들을 통해 공간과 시간을 넘어 전파되었다.
교회를 오랜 다녔어도 알려진 몇몇 제자를 제외하고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한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식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 지식은 믿음을 세우는 강력한 지지대가 된다.
대표적 증인이라 할 수 있는 12 사도를 알아보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였다.
‘사도’를 정의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육체로 계신 예수님과 물리적으로 함께 한 사람들이다. 후에 바울이 사도라 불렸지만, 바울은 예외적 사례였고, 12 사도 외에 사도라는 명칭은 어떤 시대에서도 확장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의 자리가 대단히 특별했음을 의미한다.
12 사도는 예수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예수를 직접 겪은 이들이다.
예수께서 그들 한 명 한 명을 택하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예수는 그들 한 명 한 명을 직접 택하셔서 부르셨다.
12 사도를 분류할 때, 예수님과 가까움의 정도를 기준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을 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분류에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세상에 알려진 정도를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좀 더 편한 방법으로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해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다. 12명은 4명씩 세 그룹으로 나뉜다.
베드로.
베드로 전후서를 보면 초기 성급하고 과격했던 베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베드로의 변화는 어쩌면 성경 전체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개인의 변화가 아닐까도 싶다.
불타는 로마를 탈출하는 베드로 앞에 베드로와는 반대로, 로마로 들어가는 예수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쿼바디스 도미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가 대답한다. 네가 로마를 버리니 내가 로마를 위해 다시 죽으러 간다. 그 환영을 본 베드로는 로마로 돌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한다. 비록 소설이지만, 폴란드 작가 셍캐비치의 ‘쿼바디스’에 이 장면이 감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안드레
늘 베드로의 형제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안드레는 예수의 첫 번째 제자였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에 대한 스승의 증거를 보며 기꺼이 첫 번째 제자가 된다. 이후 여러 사람을 예수께로 이끌었다. 많은 목회자가 전도를 말할 때 안드레를 모범으로 삼는 이유이다.
그는 가장 먼저 그의 형인 베드로를 예수께로 인도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현장에서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를 예수께 데려온 이도 안드레였다. 빌립은 헬라인 몇이 예수를 뵙고자 찾아왔을 때 먼저 안드레를 찾아가 상의하고, 이후 두 사람이 같이 예수께 간다.
윙크 프레트니는 안드레를 가리켜 사람들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답은 모르지만, 답을 아는 분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 설명했다.
요한
예수께 가장 사랑받는 제자로 잘 알려진 요한은 12 사도 가운데 최연소자였다.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모친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했고, 요한은 그때부터 마리아를 모셨다고 한다. 어떤 설교자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성미 급하고 혈기 왕성했던 요한이 마리아와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면서 온유하고 인내심 강한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해석했다.
그는 신학적으로 격조가 높은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야고보
안드레가 베드로의 빛에 가려진 것처럼 야고보도 그의 형제 요한의 그늘에 많이 가려진 제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베다와 살로메의 아들이며, 예수님과는 사촌지간이다.
동생인 요한처럼 급한 성미에 과격한 성격이었지만 예수님 승천 이후 초대교회에서 기둥 같은 역할을 했다(행 1:13)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살해되어 12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후, 다른 사도들 역시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사도 야고보는 신약성서 ‘야고보서’의 저자는 아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육의 동생, 야고보로 알려져 있다.
마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는 그의 이름이 ‘레위’로 기록되어 있다. 세리 직업을 갖고 있는 마태를 부르자 많은 사람이 예수를 비난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이 말씀은 그때 예수께서 한 대답이었다. 마태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다.
마태는 12 사도 가운데 드물게 식자층이었다. 그는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 유난히 많은 양의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마태복음을 기록하면서 왕으로 오신 예수를 묘사했다.
가룟 유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사나이인 가룟 유다를 가리켜 예수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했다.
일설에 가룟 유다는 열심당원(젤로트당)이었다고 전해진다. 로마를 전복시키고 유대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던 그들에게 구원을 외치는 예수의 복음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유다는 어쩌면 조국을 독립시킬, 칼을 든 영웅을 예수께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도마
도마는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노라 했다. 그런 도마 앞에 부활하신 예수께서 나타나시자 그는 결국 고백한다.
“나의 주님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후 그의 삶은 그 고백의 수행이었다. 도마는 인도까지 와서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인도 첸나이에 있는 성 토마스(도마) 대성당은 도마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진 교회로 알려져 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며 세 군데서 도마를 언급했다.
빌립
예수는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인 벳새다 사람이었던 빌립을 부르셨다. 부름을 받은 빌립은 나다니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다”라고 고백하며 “와 보라”라고 강권한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대로 빌립의 성장과정이었던 것 같다. 예수는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에서 빌립을 시험하셨다. 큰 무리를 보며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빌립은 거기서 빠르게 계산을 하고 아무리 적게 나누어줘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빌립은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간청하기도 했다.
빌립은 예루살렘의 다락방을(행 1;13) 이후에는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복음을 든 그의 행진은 멈추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빌립 사도는 소아시아의 히에로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유다
마태와 마가는 그를 다대오로 기록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야고보의 아들 유다’로,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인 아닌 유다’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최후의 만찬장에서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물었다. 예수는 그의 질문에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라 답하셨다.
유다에 대한 언급은 성경에서는 요한복음서 한 군데에서만 나오지만, 역사가 에유세비오의 ‘교회사’에서는 비중 있게 언급된다고 한다.
사도 유다는 신약성경의 유다서의 저자는 아니다. 유다서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인 유다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다 사도는 페르시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바돌로매
빌립이 나다니엘이라고 하는 바돌로매를 예수께 인도했지만, 예수는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그를 이미 보았었다. 그는 기적의 메시아를 고대하고 있었다.
예수는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고 하셨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란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는 사람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인도를 거쳐 아르메니아로 갔고, 그곳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시몬 젤로트
젤로트당은 로마에 속박되어있는 유대 독립을 위해서는 폭력과 무력사용도 서슴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열혈 애국자들이었다. 당시에 그들은 열심당으로 불렸고, 시몬은 그 당원 중 한 사람이었다.
아쉽게도 시몬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부분은 성경에 없다. 그래서 무력으로 로마를 전복시키고자 했던 그가 어떻게 구원을 설파한 예수의 제자가 되었는지는 후대의 상상과 유추에 맡길 수밖에 없다.
확실한 것은 단검을 품에 넣고 다닌 시카리(암살자)였던 그를 예수께서 부르셨고, 그는 부름에 응답해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시몬은 흑해와 바벨론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마지막은 페르시아에서 폭도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작은 야고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작은 야고보로 불린다. 성경에는 작은 야고보에 대한 기록이 한 군데도 없다. 하지만, 그는 12 사도 중 한 사람으로 예수가 계신 곳에 함께 있었다.
전승에 의하면 작은 야고보는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던 바리새파에 의해 순교당했다고 한다.
주몽이 성장해 고구려를 건국했을 즈음에 한반도에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멀고 먼 유대 땅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알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어느 화려한 왕가의 왕자님도 아닌 예수는 평범한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 그곳에서 복음이라는 화살을 쏘아 올렸다. 그 화살이 이천 년의 시간과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공간을 너머,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심장을 관통했다.
그 복음의 여정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와 눈물과 삶이 녹아져 있는지 새삼 돌아본다.
*윙크 프레트니의 ‘12제자 연구’를 기본으로 12제자에 대한 여러 소책자와 많은 목사님들의 설교를 참고해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