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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Feb 23. 2022

민낯의 복음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말은 신자나 비신자나 너무 많이 듣는 소리다. 너무 많이 들어서 신자에게는 식상하고, 비신자에게는 종교의 일방적 폭력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함의나 여정까지 그렇게 단순히 재단할 수 있을까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원초적 질문을 하다 보면 갑자기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다 낯설어지고 어려워지지만 기본적인 의미에 충실한 것이 정석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창조하셨다. 하지만 인간은 죄를 졌고, ‘나’역시 죄의 굴레 아래에서 태어났다. 하나님은 인간을 이 죄의 굴레에서 자유케 하시려고 자신의 아들인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고, 예수는 스스로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      


믿는다는 것의 기본은 이 말씀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7세기 전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셨다. 우리 중 누구도 그 현장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모두 그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그것처럼 하나님의 역사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저 만화 같고 전설 같은 내용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누군가에게는 곰이 사람으로 변한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과학적 증명과 인간 이성이 무한한 신뢰를 받은 이 세대에서 저런 말씀을 믿으라는 것 자체가 억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나님도 이것을 알고 계신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믿음을 하나님의 은혜, 선물, 혹은 선택, 예정이라고까지 설명한다.


  

아픈 사람이 전도를 받을 때 가장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회복이다. 전도자들은 하나님을 믿으면 회복과 치유의 은혜를 주실 것이라 말한다. 가난한 사람은 물질을 바라고 실직자는 취직을, 가정이 불화한 사람들은 가정의 행복을 바란다. 전도자들은 그들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을 믿으면 그렇게 다 해주실 것이라 굳세게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다 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을 믿어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할 수 있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계속 헉헉 될지도 모르고, 바람난 배우자는 아예 집을 나가버릴 수도 있다. 물론 그렇지 않고 우리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  


너무나 불편한 사실이지만, 복음은 그 결정이나 이루어짐이 결코 우리의 손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 손에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이 땅과 세계, 온 우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하나님만이 세계와 나의 주인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내 삶의 모든 결정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에 종을 위해 존재하는 주인은 없다. 종이 주인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것처럼 나는 하나님을 위해 있는 존재다. 내 행복과 내 삶의 안녕을 보장해 주기 위해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도구로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주인의 결정이 내 생각과 다르고 주인의 결정이 나를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주인의 권리이다. 종의 최고의 덕목은 주인에 대한 순종이다. 내 삶에서 나의 몫은 오직 ‘순종’이다.

     

이게 쉬운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가 바라고, 하고 싶은 것과 하나님의 그것은 잘 일치하지 않는다.


교회는, 믿으면 만사형통이 될 것처럼, 기도하면 모든 것을 들어주실 것처럼 사람들을 오해시켜서는 안 된다. 교회의 그런 가르침에서 하나님에 대한 너무 많은 오해가 생긴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이 기독교를 향해 ‘x독교’라 비난하며 외면하는 것은 기독교의 이러한 속성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과학과 이성, 합리성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기독교 신앙을 가졌을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하나님은 나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해 주실 것으로 알았다. 긴 시간을 거치면서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고, 그 이유가 ‘무지’였음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을 오해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는 대부분의 이유는 늘 ‘무지’였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세아 4장 6절.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다른 결이다. 하나님께 신앙을 고백했어도 하나님의 원칙이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알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와 깊은 고심의 시간의 필요했다. 그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느끼는 것은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믿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인본주의의 극성기인 지금은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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