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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Aug 10. 2021

여름 한낮의 서경

고깔 모양의 베트남 모자를 쓴 여자가 좁은 농로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해를 등지고 달려가는 왜소한 여자의 뒷모습은 낯설고 어쩐지 비현실적다. 영화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 고깔모자를 쓰고 있는 린당 팜도 저런 모습이었다. 여자가 린당 팜으로 보였을까? 여자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길이 묶였다.

     

사람의 무리와 세상의 온갖 잡다한 소리는 모두 불가사의한 괴물이 되어버린 더위에 잡아먹힌 게 아닐까? 착각이 들만큼 사위가 고요하다. 평야에는 매미도 없다. 밤이면 들리던 개구리나 맹꽁이 소리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는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씩 나무나 전신주 위에 앉아 워- 워- 울던 새도 어딘가로 날아가고 보이지 않는다.  

드넓게 펼쳐진 연둣빛 평야만이 뜨거운 해를 모질게 견디고 있다.

   

논둑에 앉아 있는 하얀 새의 이름이 왜가리라고 지나가던 농부가 일러줬다. 왜가리는 이 더위가 그리 괴로워 보이지 않는다. 논둑쯤에 별 움직임 없이 잠잠히 앉아 있다 어느 순간 긴 날개를 후드득 펼치며 날아오른다. 긴 날개 탓에 새는 날개 짓을 몇 번 하지 않아도 금세 날아오른다. 크고 긴 날갯짓은 여유롭고 당당하다.

날아오른 왜가리는 시야를 훅 벗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멀지 않은 곳에 다시 내려앉는다. 멀리 가든 가까이 앉든 서두르는 법은 없어 보인다. 대체로 혼자 있지만 외로워 보이지 않고 무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없다.  

왜가리가 보이면 나는 걸음을 멈추거나 운전을 멈추었다.      


집 앞에 심은 해바라기 씨가 발아하더니 잘 자라 기적같이 꽃을 피웠다. 제 이름을 증명하듯 대부분 동쪽을 향해 폈다. 대문을 들고 날 때마다 해바라기를 해바라기 했다.

폭염경보라는 적응이 어려운 주의사항이 며칠 째 계속되면서 해바라기는 슬픈 이름이 되어갔다. 줄기부터 새까맣게 타더니 위로 점점 올라오면서 타들어갔다. 그러더니 테두리 노란 꽃잎만 남겨두고 모두 까맣게 변해버렸다. 대문 옆에 있는 까만 꽃은 언뜻 흉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꽃을 자르지 않았다.

내년 그 자리에 다시 펴주기를 바라고 기대하는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기로 했다.        

        

작고 낡은 농부의 트럭이 지나간다. 에어컨이 고장 난 걸까? 트럭의 창문이 있는 대로 열려있다.   

   

바람에 흔들리이는 갈대의 수운정, 사랑에 약한 것이 사나이이 마음 우울지를 마라라 아아아아~~~


트럭을 넘어 사위로 퍼지는 구성진 노랫가락에 온 세상을  억압하고 있던 폭염이 화들짝 놀란다. 순간 댓바람이라도 지나간 듯 시원함을 느낀다.

갈대의 순정과 시원함... 이 묘한 조합을 어울리게 만든 것은 온전히 폭염이다.       


가스음을 파고드는 갈대의 수운정, 못잊어 우는 것이 사나이이 마아음 우울지를 마아라 아아아~~~~  

   

바쁜 것을 열심히 사는 것으로 자주 착각했었다. 교만과 독선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은 그런 착각의 시간이었다.

시나브로  불순물  마주하는 때는, 텅 빈 시간이 흘러가는 날들이다.      


토마스 머턴의  칠층산은 단순하고 한적한 17년간의 수도생활이 있었기에 가능했음 이제사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갈대의 순정'은 남자 가수의 소리 위에 농부의 소리가  얹혀 이중창이 되었다. 열려진 차창 너머 농부의 어깨가 가락을 따라 들썩인다.


에어컨은 농부에게 굳이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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