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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시현 Mar 23. 2022

봄, 강력.

    

3월이 들어서기 무섭게 얼어붙은 농토 위로 중장비들이 들어섰다.

내가 아는 농사 관련 중장비란 고작 경운기 정도였지만, 들어선 중장비는 거의 건설현장급이었다. 포클레인, 지그재그 모양이 선명한, 어마어마한 크기의 바퀴가 달린 장비(?), 레미콘까지 들어왔다.

중장비들은 밭을 뒤엎기도, 어디선가 가져온 흙으로 논밭을 메꾸기도, 밭의 비탈진 언저리에 시멘트를 붓기도 했다.    

  

농부의 봄은 피부가 아니라 달력으로 왔다. 농부에게 3월은 이제 곧 닥칠 농번기를 위해 분주해야 할 시간이었다. 생경하고 낯선 봄이었지만, 그들 가까이 있음으로 나 역시 농부의 봄을 맞이해야 했다.      

그 봄은 새싹이 돋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동화 같은 봄과는 거리가 있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버스의 뒷모습에서나 느꼈던 나의 봄과도 달랐다.      

작업 과정을 지키고 있는 장화 신은 농부와 중장비를 로봇처럼 작동시키고 있는 기사의 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함부로 재단할 수 없고, 재단해서도 안 될 것 같은, 현실을 버티는 '강력'이었다.

그 봄에 낭만을 노래하는 시인이나 상념에 빠진 철학이 끼어들 자리는 없지만, 그 봄도 봄임에 분명했다.

      



우리 집 앞 쪽으로  터를 닦아놓은, 수더분한 모습의 땅주인이 찾아왔다. 남자는 주스병 상자를 내밀며 이제 여기 집을 짓는다고 했다. 3개월 정도 걸리는데 먼지 나고 시끄러울 수도 있으니 양해해달라 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람처럼 훑고 지나가는 것은 분명 아쉬움이었다.

3개월 후면 외딴집이 아니려나...!


다음날부터 집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다행히 시야에 잡히는 거 외에는 크게 시끄럽지도 먼지가 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아마도 봄이 오면 집을 지으리라, 설렘으로 긴 겨울을 보냈을 것이다.


농번기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중장비와 집 짓는 중장비까지,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문의 커튼을 걷으면 군단처럼 들어오고 있는 중장비들이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왔.



센터 수업에 들어가니 카리나가 보였다. 반가웠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뉴스가 나오고서부터 카리나는 계속 결석을 했다.  행정직 선생님에게 물었더니 그냥 집에 있는 것 같다 했다. 행정직 선생님도 학교의 담임 선생님도 카리나에게 출석을 종용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심정적으로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을 게 쉽게 짐작되었다.


카리나는 우크라이나에서 온 소녀다. 가족이 모두 함께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엄마 아빠는 회사에 나가 돈을 벌고 언니와 자신은 학교를 다닌다 했다.

 

왜 결석했어?


고국의 전쟁 소식을 들은 후, 카리나 가족의 일상은 정지되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언니 모두 그냥 집에 있었다고 했다.


나의 바보 같은 질문에 카리나는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너무 슬펐니...?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은 아이에게도 조국의 전쟁은 학교도 가지 않고, 센터에도 나오지 않을 만큼 슬픈 것이었다.

아이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그래도 학교 가고, 센터에도 나와서 공부 열심히 해. 지금은 그게 너와 너의 나라를 위해서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일 거야.      

아이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이에게도 아이의 조국인 우크라이나에도 이 봄이 강력하기를 바래본다. 강력한 봄이 그들에게서 슬픔과 절망을 몰아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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