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지게 작대기

by 심시현

머리가 굵어 가는 아들이 점점 학교에 가기가 싫다고 한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혹은 은밀히, 그러더니 어느덧 대놓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말한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라’가 아닌, ‘그래도 학교는 가야 된다’는 생각을 바꿀 수가 없다.

학교에 안 가겠다고 하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는 고함을 치거나 끝없는 사설을 놀어놓을 수도 있고, 또는 삶에 지쳐 네 멋대로 해라-며 포기할 수도 있지만, 다른 선택을 했다. 어머니는 아침이면 지게 작대기를 들고 아들의 방 밖에서 아들을 기다렸다.

지게 작대기를 들고 닫힌 아들의 방문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 학교에 간다 하고는 신작로를 헤매거나 산으로 올라가 한나절을 다 보내고 내려오는 아들일지라도 지게 작대기를 들고 있는 어머니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아들은 교복을 주섬주섬 입고 나와 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학교까지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하나는 쭉 뻗은 신작로로 걸어가는 것, 하지만 신작로는 한참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보통 그 길을 택하지 않고 산을 가로질러 가는 지름길을 택했다. 산은 아침이슬을 맞은 풀들로 가득했다. 산을 지나기 위해서는 이슬에 잔뜩 젖은 풀 숲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풀숲이 끝날 때쯤이면 교복 바지와 신발은 완전히 물에 빠진 꼴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지게 작대기는 풀에 앉은 이슬을 털어내는 도구였다. 어머니는 아들 앞서 수풀을 헤치며 지게 작대기로 이슬을 털어냈다. 아들은 어머니가 털어 낸 이슬을 밟으며 풀 숲을 빠져나온다. 산길이 끝나면 어머니는 품에서 새 양말을 꺼내 건넸다.

어머니는 학교로 달려가 아이에게 좀 더 신경을 써 달라고 선생님을 닦달하지 않았고, 학업이 어렵냐며 사교육을 시키지도 않았다. 너 이러면 커서 뭐가 되겠냐며 아이를 협박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아침 등굣길에 지게 작대기로 이슬을 털어주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시간, 그 현실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것이다.

아이는 커서 작가가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에 나오는 작가 이순원의 자전적 이야기다. 아이들은 이 단원을 배우며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이야기의 배경이 낯설고 지게 작대기의 은유를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어머니의 사랑이 그다지 흥미로운 소재가 아닌 탓이 크다. 하지만 나는, 아들의 등굣길에 이슬을 터는 어머니의 마음, 그때의 어머니보다 더 나이를 먹은 아들의 회환과 그리움, 그런 것들이 해가 거듭될수록 구체적으로 그려져서 혼자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아들아이가 대학에 입학하며 기숙사에 들어갔다. 결국 아이 셋이 모두 집을 떠났다. 이제 나와 남편만 남았다. 자식들의 떠남과 남겨진 부부의 그림은 많이 듣기도 보기도 한 상황이지만, 막상 맞닥뜨리고 보니 생각과는 달랐다. 홀가분함과 야릇한 배신감, 기대감과 슬픔, 기꺼운 응원과 우울...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 함께 버무려졌다. 그 낯선 감정들을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들고 있는 지게 작대기였다.

지게 작대기는 내 손에도 들려 있었다.


기숙사 앞은 학생들과 보호자로 넘쳐났다. 신입생 진입로는 따로 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얼핏 보아도 학생보다 보호자가 많았다. 어머니 아버지 모두가 온 학생도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출동한 집들도 보였다. 그 보호자의 손손마다 지게 작대기가 들려 있었다. 세상 모든 어머니는 지게 작대기를 들고 있었다.

잔뜩 싣고 온 짐을 배정받은 방으로 먼저 옮겨 두고 아들아이가 내려왔다. 아이가 없는 집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할퀴듯 조롱하듯 나를 훑고 지나가는데, 엄마 이제 가-하는 아들아이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하고 예사로웠다. 어 그래, 그래야지. 저녁을 사주고 갈까...?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 그냥 가. 그랬다...

문득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입학할 때 졸업할 때, 입사할 때, 인생에서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때마다 내 옆을 지켰던 아버지, 아버지에게 나 역시 저런 무심한 딸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생 길고 단단한 아버지의 지게 작대기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들아이는 가족의 염려를 무색하게 만들며 ‘독립’을 잘 영위해 갔다. 좋은 친구들을 사귀고 전공도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프레쉬 맨’ 답게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제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연락을 했다.


나는 내 손에 들려 있는 지게 작대기를 내려놓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때’가 있고 그것이 무엇이든 ‘때’를 놓쳐서 아름다운 것은 없다. 지금은 지게 작대기를 내려놓을 때였다.

아마도 아들의 바짓가랑이는 젖을 것이다. 아이는 젖은 바지를 말릴 방법을 찾아야 할 테고, 그것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님을 이내 알게 될 것이다. 쓰는 것은 쉽지만 버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넘어지는 것은 쉽지만 일어나는 데는 그 몇 배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은 달콤함만 아니라 인내와 아픔을 함께 갖고 있음도 배워야 할 테고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세상은 관대하지 않음도 배워야 할 것이다. 이제 그것들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었다.

내 몫도 있었다. 나를 단속하는 것, 아이의 배움만큼 만만치 않을 내 몫이었다. 나는 작대기를 다시 들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연락에 연연하고, 아이 주변을 궁금해하고 나아가 간섭하는, 오래된 습관 같은 그 ‘어머니’를 단속해야 한다. 단속이 잘 되면 나는 ‘어머니가 아닌’ 본래의 내 자리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고, 어색하겠지만, 조심스럽게 그 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는 것이다’.

세상의 진리는 놀랍도록 차갑지만, 이 진리에 순응하는 엄마의 성숙이 이제 막 인생의 항로 위에 배를 띄운 아들을 향한 가장 큰 응원임에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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