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업.

by 심시현

찬바람 부는 계절이 왔다.

이맘때쯤이면 주위 생명체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온다. 들판 복판에 있는 집에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변화를 알게 되었다.

겨울철새들이 떼 지어 북쪽에서 날아온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북쪽 나라에서 출발해 멀고 먼 거리를 날아온 새들이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철새 사진집의 대표사진 같은 신비로운 역 V형 대오로 나는 무리- 이 대오는 정말 흩트러지지 않는다. 까마귀 같이 아무런 질서 없이 자유로운 군집으로 나는 새, 그리고 간혹은 대오에서 이탈했는지 날갯짓을 재촉하는 하나, 혹은 두세 마리의 새를 볼 때도 있다. 대오에서 이탈한 새들은 앞서간 동무들을 부르는 것인지, 어릴 때 입 속에서 놀리며 불던 꽈리 소리와 흡사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그 울음소리가 제법 크다.


마당에서 서서 하늘을 바라보면 새들의 형체와 날갯짓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대부분 큰 기러기다. 큰기러기 날갯짓은 독수리의 도도한 비행과 다르고 백로의 우아한 날갯짓과도 다르다. 우리 집 마당 위를 날아가는 큰 기러기들은 날개 끝, 그러니까 날개 전체의 1/4쯤만 쉼 없이 팔락이며 날아간다. 수천 킬로를 날아왔을 그 날개의 피곤함이 전해져 다.

큰 기러기는 착한 철새라고 한다. 추수가 끝나지 않은 논에는 결코 앉지 않고, 오직 추수가 끝난 논에만 앉아 사람들이 흘리고 간 나락만 먹는다고 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여름에는 들개(어쩌면 유기견)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던 개들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 마리씩 보이기 시작한다. 먹이 활동의 범위가 넓어진 탓이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지만 이유는 여전히 모른다. 들개라고 사람들이 이름부친 그 개들의 목에는 대부분 목줄이 채워져 있다. 목줄 있는 들개들... 작년 겨울 그 개들에게 밥을 주었다. 우리 집 대문 앞에 놔주니 들개들이 올 때마다 강이(반려견)가 너무 짖어대서 대문 건너편 길 가상자리에 놔주었었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들개 밥그릇을 마련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퇴근길에 대문 앞에서 마주친 그 개, 너무 말라서 불쑥 튀어나와 있는 뼈, 지친 얼굴에 걸음걸이마저 힘겨워 보였던 갈색 그 개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들개를 싫어하고, 들개는 위험하고 그래서 들개에게 밥을 주는 사람을 혐오한다는 여러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개의 배고픔이 만 가지 이유를 덮어 버렸다. 큼지막한 스테인리스 그릇에 사료를 한가득 담아 물그릇과 함께 두었더니 이틀 정도 지나서 그릇이 비워졌다. 사료를 먹는 들개를 본 적이 없었지만, 어느 결엔가 사료 그릇은 비워져 갔다. 그 사이, 지나가던 사람들이, 차를 타고 가던 사람들은 차를 세우고 내게 물었다. 아주머니가 여기 밥 주고 있어요? 그 말과 그 눈빛의 의미를 나는 알 수밖에 없다. 아 예, 대답하는 목소리는 언제나 기어들어갔다. 겨울이 끝나갈 때쯤 사료 그릇이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한 때는 지났으니 말이다.

다시 보이기 시작한 비루한 모습의 들개들, 내 눈에 안 띄기를 바랐지만 자꾸 보인다.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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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우리 집 뒷베란다로 들어와 나와 인연을 맺은 길고양이, 로또(어디에서나 로또로 대접받으라고 가족들이 붙여 준 이름), 새끼인 줄만 알았던 로또가 올여름 폭염에 임신을 했다. 생명을 가졌으니 기뻐해야 할까?

로또의 새끼는 정신을 홀릴 만큼 예쁘고 귀여웠지만, 고양이는 출산 후 3개월이 지나면 다시 임신이 가능하다는 글을 읽고 난 후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로또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며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고 또 다른 생명을 길 위에 두는 것은 그만하게 해 주고 싶었다. 한 번이면 됐다.


TNR신청을 하고 2달 가까이 되자 우람한 체구의 남자가 승합차 가득 포획틀을 싣고 집 앞으로 왔다. 그는 정말 ‘도시 사냥꾼’이었다. 오늘 아침 웬일인지 로또는 새끼를 두고 혼자 나타났다. 다행이었다. 어미가 잡혀가는 모습을 새끼가 보지 않게 되었으니. 남자는 베란다 안쪽으로 로또를 유인해 수월하게 포획했다. 난생처음으로 틀 안에 갇힌 로또는 잔뜩 웅크린 몸으로 눈도 돌리지 못했다. 어떤 큰 손이 내 가슴을 찍어 누르는 것만 같은 압박이 느껴졌다. 미안해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미안해 로또야 네 새끼 내가 잘 돌보고 있을 테니 너는 잘 갔다 와...

남자는 포획틀을 담요로 덮고 승합차에 실으면서 상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내일 아무 일 없이 수술이 끝나면 일주일 뒤에 이 자리로 다시 데리고 올 거예요. 그런데 중성화가 위험한 수술이어서 죽을 수도 있어요.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슴을 찍어 누르던 손의 힘이 더 강해졌다. 길고양이 한 마리 죽는 것은 세상에 아무 일도 아니다. 발길에 차인 돌멩이 하나가 어딘가로 던져져 안 보이는 것처럼 그냥 고양이 한 마리가 죽는 것이다... 하지만,

얘는 새끼가 있어요. 절대 사고가 있으면 안 돼요... 도시 사냥꾼은 내 말에 대답 없이 차를 몰고 휑하니 가버렸다.


로또가 떠난 후 새끼는 원래도 방어적이었지만 더 방어적이 되었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 도망갔고 내가 보고 있으면 좋아하는 참치나 연어도 먹지 않았다. 그나마 멀리 가지 않고 아침저녁으로 오는 게 다행이었다. 어미 잃은 새끼가 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 일주일이 더디게 더디게 갔다.


로또는 한쪽 귀 끝이 잘린 채 무사히 돌아왔다. 틀에서 풀어주자마자 풀숲으로 전광석화처럼 뛰어갔기 때문에 새끼와의 상봉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시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않겠다는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내게 너무 큰 배신감이 들었는지 로또와 새끼는 5일 정도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감정인지... 내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나는 로또와 새끼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베란다 밖을 내다보았다.

5일 정도 지난 후 로또는 새끼를 데리고 다시 나타났지만, 반가움도 잠시 나는 자연의 냉혹한 법칙을 고스란히 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로또는 하악질을 하며 새끼를 숨숨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또 조금 시간이 지나자 기어이 제 혼자만 드나들었다.


너 새끼 어디다 버렸니? 네 새끼 어디 있어? 걔는 이제 네 생의 유일한 자식이야 데리고 와-


나의 바람은 자연의 법칙 앞에서 부질없는 것이었다. 날은 추워지는 데 로또의 새끼는 독립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밥 달라고 앙앙대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집 뒤쪽으로 도시 고속도로가 났다. 들판을 가르는 농로가 끝나는 지점은 2차선 도로로 이어졌다. 이 2차선 도로를 타고 500M쯤 가면 도시 고속도로 나들목이었다.

2차선 도로는 낮에는 한가했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적고 어린이 보호구역이라 속도도 다 느렸다. 이 고요한 도로가 아침 7시만 되면 고속도로를 타려는 승용차들로 주차장처럼 꽉 막혀버렸다. 빨간색 자동차 브레이크등이 도로를 촘촘히 메꾸는데, 그 모습이 어쩐지 수백 개의 눈을 가진 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녁 7시면 아침에 나갔던 그 차들이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큰 기러기처럼 말이다. 도로는 똑같은 풍경을 재현한다. 8시면 해체될 모습이지만 내일 아침 7시면 역시 재현될 것이다.

감히, 그들에게 "왜?"라고 물어서는 안 된다,

생존은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업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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