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론' 스키밍.

by 심시현

‘공산주의’

데모크리스토스(기원전. 약 460 ~380)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세상 모든 것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와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세상 모든 현상은 분리될 수 없는 원자들의 운동과 결합이었다. 영혼이나 사람의 인식까지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우주의 운명과 인간의 삶은 필연적으로 원자의 운동법칙에 따른다고 보았는데, 이를 결정론적 자연관이라 한다.

원자론은 그리스에서는 불경한 이론으로 취급되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그리스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로마의 철학에도 영향을 주며 명맥을 유지했다.

17세기 후반 영국의 화학자 로버트 보일은 원자론을 위시한 유사한 개념들을 ‘유물론’이라 명명했다. 이때부터 ‘유물론’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했고, 영국의 경험론과 프랑스의 계몽사상 등이 이론적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영국의 철학자인 홉스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사고는 모두 물질 운동의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이때까지의 유물론은 대체로 철학적 사조의 범주였다.


기체의 부피와 압력은 반비례한다는 ‘보일의 법칙’을 발견한 로버트 보일은 유물론이라는 명칭으로, 물질을 세계의 본체로 보는 이런 이념의 정체성을 구체화시켰지만, 그 자신은 유물론을 혐오했다. 그는 무신론을 경계하며 우주와 생명의 복잡한 구조를 통해 창조주의 존재를 확신했다. 자연계의 질서와 규칙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설계와 섭리를 증명하는 것으로, 그 설계를 밝히는 수단을 과학으로 보았다.

19세기에 이르러 유물론은 여러 갈래로 나타나며 철학의 범주를 벗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 물리학, 화학, 생물학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런 발전을 토대로 물리적 법칙과 과학적 실험에 기반한 ‘기계적 유물론’이 출현한다. 기계적 유물론은 모든 현상을 분자, 원자의 운동과 에너지 법칙 등 과학적 원리로 해석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이 출현한다.

이들은 사회나 인간의 행동은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물론’과 사물이나 현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립과 투쟁, 발전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변증법을 결합하고, 산업혁명의 이면이 드러나는 당시의 시대상을 호기로 ’ 공산주의‘를 탄생시킨다. 공산주의는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이념을 넘어 현실에서 실현된다.

철학적 개념에 가까운 변증법적 유물론을 토대로, 경제적 조건을 기준으로 한 계급투쟁, 자본주의 비판, 사회변혁에 초점을 맞춘 이념을 ’ 과학적 사회주의‘라고 한다.

’ 사회주의‘

다른 듯 같은 듯, 공산주의와 혼란을 주는 사회주의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에서 기인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토대로 등장한다.

초기 사회주의는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체제가 초래한 사회 불평등과 경제적 문제를 비판했고, 대체로 그 선에서 머물렀다.

19세기 초반, 로버트 오언과 생시몽 등은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형태의 이상적인 사회를 구상했다. 그래서 이들을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그러나 이들 사회주의 사상은 결국 19세기 중반, 막스와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로 귀결된다.


’ 사회 민주주의‘

사회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혁명과 같은 무력으로 무너뜨리지 않고, 민주적인 방법과 과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변혁시키겠다는 이념이다.

사회 민주주의적 경향은 프랑스혁명 당시, 도시빈민과 농민을 대표한 쟈코뱅당의 주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이념을 확립한 사람은 19세기말 독일 정치인 베른슈타인이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급진성과 폭력성을 비판한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하며 사회 민주주의 이념을 확립했다.

사회 민주주의 이념은 다음 몇 가지 사항으로 대표된다.

-그들은 무장 혁명보다 의회주의 개량을 통해 사회주의 목표를 추구한다.

-생산 수단의 완전한 국유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부정하지 않으며, 독재정치와 폭력혁명을 지양한다.

-노동자의 권리, 복지 정책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


현대 많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제도의 이념적 기반은 이 '사회 민주주의'에 있다고 보고 있다. 사회 민주주의 이념 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은 20세기 중반 이후 서독 민주주의 발전과 사회국가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을 공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 진보 좌파‘

유물론에 뿌리를 두고 현대화한 다양한 가치와 이념 동의하고 따르는 이들을 통칭해 ’ 진보좌파‘라고 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유물론이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같은 단어보다 훨씬 더 익숙한 명칭일 것이다.

정치적 관점을 대표하는 좌파, 우파는 프랑스혁명 당시, 쟈코뱅당을 포함한 공화파는 의장의 왼쪽에 자리 잡고, 앙시앙레즘을 주장한 왕정파는 의장의 오른쪽에 앉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진보=좌파,라는 등식의 성립에는 의문점이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동의어로 쓰인다.

진보좌파의 스팩트럼은 좁다고 할 수 없지만, 사회개혁과 불평등 해소, 평등주의, 큰 정부를 통한 공공복지 강화 등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다. 이런 이념과 이기주의가 결합해 ’ 강남좌파‘라는 해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 기독 좌파‘

20세기 이후 막시즘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회 민주주의, 신좌파, 생태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나키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 가운데 기독 좌파가 있다.

’ 기독 좌파‘를 말 그대로 푼다면 ’ 기독‘은 전체 집합이 되고, 뒤의 ’ 좌파‘는 부분 집합이 된다. 이것은 기독좌파가 갖고 있는 좌파로서의 모든 속성은 그대로 기독교의 속성이라는 뜻이다.

기독좌파는 20세기 남미의 해방신학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남미는 식민지에서 독립은 했지만, 구조적 불평등의 뿌리가 깊어 일반 국민의 가난과 고달픈 삶에는 변화가 없는 상황이었다.

예수는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를 돌아보라고 하셨다. 그분의 시선은 약자를 향했고, 그들의 질병과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처음 해방신학을 시작한 이들의 마음은 아마도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 억눌린 자를 보고 연민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욱이 그 괴로움이 어떤 ’ 힘‘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면 분노 역시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그들과 예수는 완전히 달랐다.

예수의 방법은 내가 내 것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폭력이든 혁명이든 남의 것으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예수의 방법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기독 좌파의 태도도 사랑이라면) 외에 기독 좌파의 무엇이 기독교인지는 이해하기 어렵다. 거침없이 ’ 투쟁‘을 외치고 거리낌 없이 적개심을 드러내는 이가 종교적 복장을 하고 있고, 그 생계가 교회에 있다고 그들이 ’ 기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자의 것이 아니고, 국가의 것도 아닌, 내 것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참된 기독좌파의 출현을 바라본다.

현재 우리나라 기독 좌파는 사회주의 이념, 평화운동 등에 적극적인 한편, 성소수자, 낙태, 차별금지법에 관용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 마무리‘

사회주의나 좌파의 사상에는 분명 설득력 있고, 매력적이어서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다. 때로는 그 이념의 정치세력으로 인해 실제적 이익을 볼 때도 있고, 때로는 ’ 정의‘라는 항거 불가능한 깃발이 되기도 한다. 정말이지 ’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 ‘

하지만, 아무리 정의롭고 아름다운 수사가 붙더라도, 세상적으로 아무리 공감이 가더라도, 나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이런 사상들의 뿌리는 일관되게 유물론이다.

유물론은 일점일획도 그리스도와 양립할 수 없다.

복음이 위태로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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