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부재중, 나라를 지키러 갔습니다!

by 심시현

출생, 성년, 결혼, 죽음... 사전에서 설명하는 통과의례의 예시다. 통과의례! 사람이 일생 동안 새로운 상태로 넘어갈 때 겪어야 할 의식의 통칭이라고, 프랑스의 인류학자 방주네프가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 통과의례를 설명하는 이런 개념을 알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인생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지점을 알고 있고, 모두가 그 지점을 잘 통과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시대, 중요한 통과의례는 소년기 학교 입학, 대학 입시, 취업, 결혼 등일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통과할 지점에서 지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웠음에 분명하다.


아들아이가 고2 때 나온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아 들고서야, 나는 비로소 이 땅에 태어난 아들들에게는 입시나 취업과는 다른, 또 하나의 통과의례가 있음을 깨달았다. 입대!

입학도 취업도 결혼도 ‘내’가 싫으면 안 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있었지만, ‘입대’라는 통과 지점에는 선택도 의지도 그 무엇도 없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위해서 내 아들이 무조건 가야 되는 길.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그조차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더러더러 보았던, 군대 가기 싫어 다른 나라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떠올랐다. 주위의 경멸 어린 시선을 알면서도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들의 무개념 탓인지 아니면 군대라는 곳의 위험성 탓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재수를 하고 대학에 들어간 아이는 입학하자마자 입대를 준비했다. 어이가 없었다. 국민의 의무로 가는 군대에 뭘 준비까지 해야 하니? 아이는 피식 웃으며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준비에는 헌혈, 봉사활동, 그리고 이런저런 자격증까지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원하는 군대에 가려면 대학입시 같은 과정을 치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잔뜩 골이 난 아이처럼(나라에 골이 났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아이는 차근차근 준비했고 ‘드디어’ 합격했다고 좋아했다. 그 사이, 이 땅의 아들로 태어난 아들의 친구 녀석들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입대를 했다. 그때마다 아이는 입대 파티를 해 준다고 나갔. '입대' 앞에서 항변 한마디 없이 묵묵히 주어진 길로 걸어 들어가는 녀석들은 매사 삐딱선을 타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웠던 바로 그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들아이에게, oo이 입대했어-라는 말을 들을 때면, 그 친구가 군에서의 시간을 무탈히 보내고 집으로 잘 돌아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아들을 입대시키는 데 있어서 내 주위는 모두가 선배였다. 요즘 군대는 편하고 좋아, 그리고 시간 금방 가, 모두 한결같이 말했지만, 그런 말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확률이란 나에게 안 일어나면 0%, 일어나면 100% 아닌가!. 기사나 쇼트영상으로도 군 사고 관련 소식은 보지 않았다. 아니, 저절로 피해졌다. 예전 같으면, 애끓은 부모들의 기사를 눈물을 흘리며 봤겠지만, 아들의 입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볼 수가 없었다.


진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우리는 새벽 3시에 출발했다.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었지만, 잠에 들지 못했다. 이천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둘째 딸아이 차로 바꿔 타고 다시 진주로 향했다.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할 아버지에 대한 딸아이의 배려였다. 딸아이가 말했다. 회사에서 동생 신병훈련소 가기 위해 휴가 낸다고 했더니 팀장님부터 남자 팀원들이 모두 몰려와서 한 마디씩 거들더라고, 동생한테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라 하면서. 딸아이가 덧붙였다. 군대에 대해 정말 할 말들이 많은 것 같아.

한국 남자들에게 ‘군대’란 무엇인지... 개인마다 군대에 대한 기억과 소회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지위나 학벌, 경제력 등을 막론한, 한국 남자들의 최대 공약수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입대를 앞둔 아이에게 친지들은 용돈을 보내고, 격려 전화를 하며, 수능을 치를 때보다 더 마음을 써주었다.

진주는 조용한 도시였다. 그 조용함을 깨는 건 여기저기 보이는, 까까머리 아이를 한 명씩 데리고 있는 가족들이었다. 거리에도 식당에도 주차장에도 모두 같은 구성의 가족들이었다. ‘왜?’라는 물음조차 없이 먼 길을 기꺼이 달려온 이들, 물어보지 않아도 그들은 모두 ‘한 마음’이었다. 군에서 ‘까까머리’에게 영향을 모든 이들이 이 ‘한마음’을 알고 잊지 않기 을 모아 기도했다.

‘입대’는 허망했다. 날씨 때문에 입대식이 없으니 시간 엄수해서 들어오라는 문자가 왔다. 신병훈련소에 도착하자, 아이는 ‘나 갈게’ 하더니 셔틀버스를 향해 휭-하니 뛰어갔다.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처음 수업을 하던 날, 작품이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던 날, 큰 애가 태어난 날, 셋집에서 탈출해 '내 집'으로 이사하던 날... 아들의 신병수료식이 있던 날은 그런 날 중 하나였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설렘 반 불안 반이었다. 변해있을까, 변했다면 어떤 모습일지... 훈련소에서 친절하게 보내 준 사진이 있었지만, 어쩐지 작위적으로 보여서 진짜 모습이 더욱 궁금했다.

우리나라에 그런 ‘식’이 있었다. 신병 수료식! 병정 인형처럼 각을 잡고 도열해 있는 병사들, 연단에서 울려 나오는 강하고 큰 목소리, 함성 같은 병사들의 구호소리, 펄럭이는 깃발들, 영화에서나 봤던 그런 장면이었다. 너무 그림 같아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졌지만, 내 아들 역시 이 낯선 장면의 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식이 끝나고 혼잡해진 연병장에서 아들아이가 먼저 나를 찾았다. 내 앞에 우뚝 선 병사, 순간 아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각도기로 재어 놓은 것 같은 반듯한 어깨, 1자의 꼿꼿한 자세,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내 입에서 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의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절도 있게 경례 자세를 취한 아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

“필승”

내 앞에 선 청년은 이미'필승'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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