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국어 수업에서나 스피치 강사들은 늘 ‘경청’을 강조한다. 경청을 말을 잘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대화의 기술로 여기기도 한다. 좀 더 나가면 경청의 자세를 인격과 연결시킨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인품이 돋보이고, 반대의 사람은 인품도 그저 그런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관점에 수용적인 자세를 보이기 때문에 결국 경청은 미덕이다.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이런 방식은 ‘독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독서를 강조하다 보니 늘 독서는 좋은 것, 우리가 해야 할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읽으면 좋은 것인가? 상대가 누구든, 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잘 들어주어야 할까?
세상에는 읽을 필요가 없거나, 읽는 것이 오히려 해로운 책들도 많다. 아니 아주 많다. 배고팠던 시절에는 음식이라면 가리지 않고 먹었다. 하지만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을 사람들은 알았고 경제적 풍요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영리하게 먹으려고 한다. 탄수화물이나 지방은 가능한 피하고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등을 먹는 식으로 말이다. 책에도 탄수화물이나 동물성 지방 같은 책들이 있다. 또는 입을 심심치 않게 할 뻥튀기 같은 책도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규칙은 나이가 어릴수록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경청의 원리도 독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들어주는 사람은 늘 들어주는 사람의 위치에 있다. 말하는 사람은 또 늘 입을 다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역할이 대체로 고정되기 때문에 경청을 인격과 연결시키는 것은 일정 부분 맞는 것 같다.
상담사처럼 들어주는 역할이 직업이 아닌 이상 들어주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놓지 않고, 마음이 유하고, 거절을 잘 못하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꺼리는 경향성을 갖는다. 반대로 늘 입을 열어야 하는 사람은 아주 단순하다. 상대보다는 자신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그 외의 것은 잘 보지 못한다. 상대의 기분을 헤아린다거나 상황을 돌아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안중에 없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악의가 없지만, 많은 면에서 아쉬운 사람들이다. 이 양자의 역할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신조어가 있다. ‘감정 쓰레기통’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은 일견 쉬워 보이지만, ‘듣기’는 쓰레기통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고되고 힘든 일이다. 내가 관심이 없는 이야기, 지루한 이야기, 격정적인 감정의 토로, 누군가에 대한 비난, 자신 인생의 풀스토리, 깊은 상처를 꺼내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말하는 쪽에서는 감정을 해소하는 ‘순기능’을 하겠지만, 듣는 쪽에게는 어렵고 힘듦을 감내케 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대화란,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말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다. 이때 주고받는 대화의 양은 엇비슷해야 하고, 질적인 면에서도 균형이 맞아야 한다. 질적인 균형이란 말의 무게를 의미한다. 한쪽에서 어제저녁 먹은 음식을 이야기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어린 날의 상처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내가 어려운 이야기를 꺼낼 때는 상대는 거기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해결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 너는 아무 말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만 줘, 내게 위로만 줘-하는 태도는 내 가방 속의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는 행동이다.
경청은 분명 바르고 좋은 행동이지만 우리가 매사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내 귀를 열지 닫을지 선택할 수 있다.
경청보다 중요하고 강조되어야 할 것이 ‘올바른 대화’다. 올바른 대화란, 내가 경청이라는 올가미에 묶이고 싶지 않은 만큼 상대에게도 경청이라는 올가미를 놓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말하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대화에서 말하기란 상대의 ‘듣기’에 대한 배려이자 불쾌함 없이 원만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화용론 분야의 뛰어난 언어학지인 폴 그라이스는 이런 말하기에 대해 명쾌한 규칙을 제시했다. 그는 이것을 대화의 격률이라고 했다.
대화의 격률.
첫 번째. 양의 격률. 양의 격률은 TMI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너무 적게 말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대화 목적에 맞는 알맞은 정도의 정보를 말하라는 것이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단답형으로 대답해 상대방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나 지난주의 쇼핑을 기승전결로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 양의 격률에 어긋난다.
두 번째. 질의 격률.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의 생각이나 추측을 사실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또는 출처도 분명치 않은 말을 전하면서 하나를 더 보태기도 한다. 모두 질의 격률을 위반한 것이다. 대화를 할 때는 사실인 내용이나 적어도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내용에 대해서만 이야기해야 한다. 거짓이나 내용의 진위가 불분명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 관계의 격률. 사적인 관계에서 담소를 할 때도 주제가 있다.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옮겨갈 때는 양자의 묵시적 합의가 존재한다. 하지만 주제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튀는 탁구공처럼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할 때, 강사들은 가장 지친다. 이들은 이미 지나간 주제를 다시 꺼낸다거나 진행되는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고 이야기한다. 일순 수업의 맥락은 끊기고 수강생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진다.
대화의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관계의 격률이다.
네 번째, 태도의 격률. 애매모호하거나 얼버무리는 식의 말, 너무 장황해서 의미나 논리적 구조가 흐트러진 말, 이런 식의 대화는 상대로 하여금 말하는 사람의 의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태도의 격률은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조리 있게 말함으로 상대방이 말하는 사람의 의사를 명료하게 알게 하는 것이다.
잘 이야기하는 법(=대화의 격률을 지키는 말하기)은 ‘경청’만큼, 또는 그보다 앞서 강조되어야 한다. 말하기와 듣기의 순환과정인 대화에서 제대로 말하는 것은 미덕이자 가치 있는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대화의 격률을 지키는 사람과 대화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