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외출, 엄마를 떠올리다.
포토샵을 배우기 위해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신청했다. 실업자로 신청했는데 신청과 카드 발급 대상으로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기까지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되는데 그동안 왜 신청을 고민했는지 나 자신이 의아할 정도였다. 카드는 집으로 받아볼 수 있고, 직접 은행에 가서 수령할 수 있었다. 은행도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수령할 수 있는 은행이 따로 있었다. 좀 수고스럽긴 하지만 빨리 카드를 받고 싶어 은행에서 받는 걸로 결정했다.
은행에는 꼭 ‘국민내일배움카드 발급확인서’를 출력해 가지고 가야 한다. 집에는 프린터기가 없어 가까운 도서관에서 출력을 하기로 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은행은 옆 동네에 있었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도서관까지 들렸다가자면 훨씬 더 걸렸다. 번거롭긴 하지만 왠지 귀찮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설레었다. 3월이 되면서 날씨도 따뜻해졌고 걷기 딱 좋은 날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은행 가기 전날 밤, 내가 갈 은행의 위치를 지도 어플로 확인하면서 주변에 들를 곳이 있을지 찾아봤다. 가끔 가는 동네라 아주 낯선 곳도 아니었다. 편집숍 구경을 할까, 캐릭터숍에 가서 굿즈를 살까, 도넛을 사 올까. 게다가 어머님이 오만 원을 주셔서 주머니도 두둑했다. 도서관부터 은행까지, 어디를 구경할지 동선을 그리며 잠을 청했다.
다음날 날씨가 조금 흐렸다. 해가 쨍쨍 하길 바랐는데, 실망스러웠다. 머리를 감고, 커피를 마시고 점심쯤 집을 나섰다. 그리고 계획대로 먼저 도서관에 들렀다. 가끔 들릴 때마다 프린트를 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지만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었다. 안내문을 보며 프린트를 하고, 카드 결제를 했다. 중간에 약간 막막해서 사서님을 부를까 했지만 혼자 어찌어찌 잘 해결했다. 확인서를 출력했으니 본격적으로 은행을 향해 걸었다. 마침 날씨가 맑아지고 있었다. 햇살도 따뜻하고 반팔 차림으로 다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걷다 보니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씁쓸했다. 생각보다 백수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작년만 해도 이때까지 놀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은행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대기하는 사람은 많고 분주해 보였다. 대부분 어르신들이었고 젊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안내하는 직원분은 어르신들에게는 ‘어떤 일로 오셨어요?’라고 일일이 물었지만 나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 젊은 사람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하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았다. 발급받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교육을 신청하고 열심히 듣는 일만 남았다.
은행을 나서니 개운했다. 목표를 달성했으니 자유롭게 다니면 된다. 먼저 근처에 있는 편집숍을 구경했다. 오랜만에 귀여운 캐릭터 용품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사고 싶은 것도 많아서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했는지 모른다. 용돈은 한정적인데 세상엔 갖고 싶고, 예쁜 물건이 너무 많다. 이미 우리 집은 물건으로 포화 상태이기에 어렵게 두 개만 골랐다. 편집숍을 나서서 근처 백화점을 구경할까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금 망설여졌다. 백화점 지하 식품 코너도 가보고 싶고, 서점에도 들르고 싶었지만 집에 가고 싶었다. 은행과 편집숍 한 군데만 들렀을 뿐인데 시간도 꽤 많이 흘러 있었다. 게다가 오랜만에 걸으니 다리도 아팠다. 그렇게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잠에 들기 전, 오랜만의 외출을 떠올렸다. 나는 매일 집에만 있으면서 글을 쓰거나, 취업 사이트를 보거나, 어설프지만 살림을 하고 있다.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도 하지 않고, 약속도 잡지 않는다.(인간관계가 좁다 보니 약속도 거의 없다.) 외출에 설레어 본 적이 언제였나 싶었다. 그리고 엄마를 떠올렸다.
혼자 사는 엄마는 늘 모든 것을 혼자서 한다. 바다를 산책하는 것도, 장을 보는 것도, 쇼핑을 하는 것도 말이다. 이런 나의 하루를 떠올리다 보니 엄마와 같은 하루를 보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외출할 때는 항상 남편이 함께 한다. 산책도, 장을 보는 것도, 쇼핑도. 가끔은 고향 친구와 함께 한다. 혼자서 어디를 다녀오고 구경도 하고 한 것이 오랜만이었다. ‘늘 혼자 다니는 엄마의 기분은 어땠을까?’ 생각했다.
엄마는 혼자 외출은 잘하지만 혼밥은 어려워했다. 그래서 엄마는 평소 궁금했던 식당이나 먹고 싶었던 걸 기억해뒀다가 내가 내려가면 먹으러 가자고 말한다. 또 엄마는 혼자 쇼핑을 가면 가끔 나에게 줄 물건을 사두곤 했다. 남편과 쓰라며 그릇과 접시를 세트로 주기도 했고, 폭신폭신한 이불도, 심지어 고무장갑에 빨랫비누까지 말이다. “이런 건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사”라며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엄마에게 받은 접시도, 이불도 너무나 잘 쓰고 있다.(폭신폭신한 이불은 눈치 빠른 우리 집 뚱냥이가 점령해버렸다.)
혼자만의 외출은 설레고 즐거웠지만, 엄마를 떠올리자 쓸쓸해졌다. 쇼핑을 하며 함께 ‘이쁘다’ ‘어울린다 ‘라고 할 사람이 없는 것. 산책을 하며 ‘여기 너무 좋다’라고 나눌 사람이 없는 것. 엄마는 산책 중 보는 풍경도 혼자 마음에 담아오고, 쇼핑 중 보는 예쁜 물건도 혼자 감탄하며 사 올 것이다. 그런 엄마의 일상에 소소함을 나눌 누군가가 곁에 없다는 사실에 쓸쓸함이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설레는 외출을 했지만 집으로 빨리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가족이 있어도 나이가 들면 결국 혼자가 되는 걸까? 혼자서 남은 시간의 외로움을 묵묵히 견뎌나가야 하는 걸까? 외로움은 가족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도 대신해줄 수 없다. 문득 나는 이 외로움을, 혼자 지내야 할 미래의 시간들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아, 그것은 너무 먼 미래의 일이야. 미래의 외로움까지 떠올리려 하지 말자.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어떤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