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로
새벽 5시 50분.
비몽사몽한 채로 일어나 롱패딩을 걸치고 신분증과 지갑을 챙겼다.
어스름한 새벽길을 정신없이 걸어나왔다.
저 멀리 주민센터가 보였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중엔 6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들도 꽤 있었다.
‘줌바댄스’ 수업 등록 선착순 30명.
다행히 순번 안에 든 것 같다.
같이 하기로 한 엄마들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5시 반쯤 나왔지~”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론 놀랐다.
이건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였다.
그저 번호표 하나 받았을 뿐인데, 이상하게 큰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다.
첫 수업 날, 나를 데려온 엄마가 슬쩍 귀띔해줬다.
“이번 분기엔 영미씨가 일이 있어서 빠졌거든.
은채엄마가 이쪽에 서면 되겠다.”
내 눈에 비친 줌바 교실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도 조용한 규칙이 분명히 살아 있는 곳이었다.
누가 어디에 서야 할지, 누가 앞줄이고 누가 뒷줄인지.
말은 없지만 이미 다 정해져 있는 듯했다.
눈치와 배려, 오래된 관성과 암묵적인 합의로 유지되는 이 곳은
생각보다 훨씬 정교한 사회였고,
나는 처음으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날, 나는 엄청난 인맥을 자랑하는 그 엄마 덕분에
신입에게는 과분한, 중간보다 살짝 뒷줄에 섰다.
그리고 어설프게 허우적대며
줌바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춤을 춰본 게 대체 언제였더라.
그런데, 묘하게 재밌었다.
같이 땀 흘리는 사람들 사이에 내가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수업이 끝난 뒤엔 처음 가보는 밥집에서 다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근처 카페에 모여 아이들 이야기, 반 분위기, 선생님 얘기, 학원 일정까지
끝도 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아이들 이름부터 성격, 어떤 수업을 듣는지까지 다 알고 있는 엄마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같은 반 친구 이름도 절반은 가물가물한 나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렇게 며칠, 몇 달이 흐르고
나는 매일 아침, 습관처럼 운동복을 챙겨 입고
주민센터 강당으로 향하는 사람이 되었다.
혼자였다면, 아마 진작 포기했을 것이다.
어느새 동작들도 제법 익숙해졌고,
살도 조금 빠져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헐렁해진 운동복을 핑계 삼아 새 옷을 좀 살까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중,
메일함에 낯선 제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온라인 클래스 개설 관련 제안드립니다”
가게를 정리한 지 8개월쯤 지난 시점이었다.
일을 완전히 놓고 지내는 게, 어쩐지 허전하고 불편하게 느껴져서
유튜브라도 조금씩 찍어볼까 싶어
주방을 정리해두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이게 다시 뭔가로 이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줌바도, 글도, 수업도.
하나씩 살아나는 하루들이
나도 모르게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건 내가 ‘괜찮아지고 있다’는
조용한 회복의 신호가 아닐까싶다.
이제, 이 이야기도 거의 끝에 닿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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