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어머니의 그륵
어머니는 그륵이라 쓰고 읽으신다
그륵이 아니라 그릇이 바른 말이지만
어머니에게 그릇은 그륵이다
물을 담아 오신 어머니의 그륵을 앞에 두고
그륵, 그륵 중얼거려보면
그륵에 담긴 물이 편안한 수평을 찾고
어머니의 그륵에 담겨졌던 모든 것들이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학교에서 그릇이라 배웠지만
어머니는 인생을 통해 그륵이라 배웠다
그래서 내가 담는 한 그릇의 물과
어머니가 담는 한 그륵의 물은 다르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어머니의 삶을 통해 말을 만드셨고
나는 사전을 통해 쉽게 말을 찾았다
무릇 시인이라면 하찮은 것들의 이름이라도
뜨겁게 살아있도록 불러 주어야 하는데
두툼한 개정판 국어사전을 자랑처럼 옆에 두고
서정시를 쓰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정일근, 「어머니의 그륵」
에즈미는 자신이 사전에 메여있다고 느꼈다. 리지가 에즈미의 노예 여자(Bondmaid)이자 연결된 여자(Bondmaid)이듯이 에즈미 자신이 사전에 대해 그러하다고. 에즈미는 항상 몽당연필과 쪽지를 주머니에 들고 다니며 세상의 말들을 기록했다.
그런 에즈미를 보면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이 떠오른다. 이 시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말 하나가 살아남아 빛나기 위해서는 / 말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있어야 하는데'. 에즈미가 적은 단어들에는 그 단어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에 대한 에즈미의 사랑이 있었다. 그랬기에 그 말들은 에즈미가 죽은 뒤에도 사전 속에 살아남아 빛났다. 그런 의미에서 말은 행동보다 강력하다. 말은 행동과 달리 영속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에즈미가 그랬죠. 우리 구호가 '말 말고 행동'이 아니라 '행동 말고 말'이면 좋겠다고.
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서제인 옮김, 엘리(2021), 336면
"하지만 그분 좀 이상해요, 그렇지 않나요?" 삶아서 다진 대구를 테이블로 가져오며 내가 말했다. 대구는 둘러싼 매시트포테이토 안에서 물이 고여 썩어가는 수영장처럼 보였다.
"우린 누구나 조금씩 이상해, 에즈미."
핍 윌리엄스, 앞의 책, 323면
많은 어린아이들이 그렇듯 어린 에즈미 또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정의 내렸다. 어떤 사람은 좀 이상하고, 리지가 친구와 있지 않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해 에즈미는 소중한 리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이었는지 깨닫는다. 그는 성장했다.
리지의 소중한, 하나밖에 없는 어머니의 유품인 핀을 망가뜨렸을 때 에즈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즈미의 엄마 릴리는 여기저기에 그를 설명하고 정의하는 물건과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리지에게는 오직 웃지 않는 어머니의 사진과 핀 뿐이었다. 에즈미는 이를 단어에 빗대어 서술한다. 에즈미가 배우는 세상은 곧 에즈미가 배우는 말이다. 에즈미는 시장과 거리의 말을 배우면서 더 넓은 세상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아간다.
나는 우리 집 여기저기에 있는 릴리의 사진들을 떠올렸다. 아빠의 옷장에 여전히 걸려 있는 릴리의 옷과 푸른색 봉투들을. 디트 고모가 생일마다 내게 들려주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엄마는 천 장의 쪽지가 딸린 단어 같았다. 리지의 어머니는 쪽지가 두 장밖에 딸리지 않은 단어였다. '손으로 꼽을' 필요도 없는 숫자. 그리고 난 그중 하나를 마치 '필요 이상의' 존재처럼 취급했다.
핍 윌리엄스, 앞의 책, 74면
에즈미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상한 구석이 있다. 단어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단어를 얻기 위해서는 훔치는 것도 불사하고 관습을 어기기도 한다. 에즈미에게 단어는 다른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러한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개러스는 에즈미의 그러한 성향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청혼을 하기 위해 반지와 단어 사전 중에 선택을 해야만 했을 때, 개러스는 단어 사전을 선택했다. 둘이 언젠가 사라져도 단어 사전 속에 영원히 남은 것을 생각하면 우주를 떠돌기라도 하는 기분이 든다.
이 사전은 배스커빌 서체로 인쇄되었습니다. 중요하고 가치가 담겨 있는 책들을 위해 디자인된 서체로, 그 선명함과 아름다움을 고려하여 선택되었습니다.
개러스 오언
식자공, 인쇄공, 제본공
핍 윌리엄스, 앞의 책, 489면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질 때 우리는 결코 완전히 편안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우리는 결코 완전히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으리라. 타인을 기쁘게 하거나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혹은 설득하거나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해, 우리의 움직임은 의식적이 되고 우리의 표정은 작위적이 된다.
핍 윌리엄스, 앞의 책, 437-438쪽
에즈미는 무방비한 개러스를 보고 마치 자고 있는 그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그의 모습은 그동안 에즈미 앞에서 개러스가 보인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에즈미는 타인의 시선 안에서 완전히 편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에즈미와 개러스가 점차 서로를 편안하게 느꼈다고 믿는다. 아래와 같이 둘을 묘사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세인트 바너버스 교회를 배경으로, 한 손에 은방울꽃 다발을 들고 개러스 옆에 서 있던 네가 얼마나 완벽하게 편안해 보였는지 말해주고 싶다고 생각했어.
핍 윌리엄스, 앞의 책, 473면
"저는 청소를 하고, 요리를 돕고, 불을 피워요. 제가 하는 모든 것은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거나, 더러워지거나, 불에 타서 없어져요. 하루가 끝날 때면 제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하나도 안 남아요. ... 제가 놓은 자수는 언제나 여기 있을 거예요."
핍 윌리엄스, 앞의 책, 62-63면
이 소설에서 다루고자 하는 대상은 민중이고 여성이다. 당시에 주목받지 못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고 열심히 살아간 그들이다. 그들의 흔적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고 그리하여 사라졌다. 저자 핍 윌리엄스는 그러한 역사를 상상력으로 채워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했다. 마치 리지가 자수를 놓고, 에즈먼이 말들을 수집하고, 개러스가 이를 사전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여성의 참정권 시위와 전쟁에서 에즈미는 최전선에 나서는 행동파이기보다는 기록자였고, 다른 사람들은, 또 자기 자신마저도 행동이 없는 말뿐이라며 비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기록의 의미와 함께 에즈미의 발자취와 성향을 일리 있게 해명한다. 에즈미의 기록은 그 자신의 관심을 드러낼 뿐 아니라 세상이 어디에 무관심했는지까지 보여주었다.
이 책은 두 개의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단어들이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그 단어들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가능할까?
핍 윌리엄스, 앞의 책, 562면
다만 에즈미가 끝까지 리지의 보살핌을 필요로 해서 아쉬웠다. 에즈미는 리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고, 리지도 마찬가지였다. Bondmaid가 연결돼 있는 여자라는 대목에서는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둘의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둘이 얼마나 서로에게 깊이 얽혀있는지, 둘이 서로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는 리지의 부당한 위치에 대한 아무런 해명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이러한 변명이 구차하게 느껴진다.
나는 리지가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꾸리기를 바랐는데 20세기가 되어서도 신분 격차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에즈미는 리지의 종속적인 삶에 문제를 느끼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는 않았다. 당시 여성주의 운동이 신분 낮은 리지와 같은 계층을 배제했다는 문제를 예리하게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리지의 처지를 그렇게 내버려 둔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조판공
(핍 윌리엄스, 앞의 책, 357면)
"이리 오렴, 우리 귀여운 양배추, 와서 안아주렴."
―데리스 오언
(핍 윌리엄스, 앞의 책, 38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