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화 May 05. 2022

ᅁ ㅚ로움으로의 회귀

무라카미 하루키의 「드라이브 마이 카」와 이석원의 「사생활」

죽은 아내는 정기적인 관계를 맺었던 불륜만 네 번이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만족스럽고 둘은 친밀했는데, 아내가 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는지 가후쿠는 영영 물어보지 못했고 답을 듣지 못했다. 나도 그가 전해주는 말을 통해 짐작해볼 뿐이다.


"연기를 하면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있어. 그리고 끝나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오지. 그게 좋았어."
"내가 아닌 것이 되는 게 좋아요?"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걸 안다면."
"원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어요?" (중략)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

- 무라카미 하루키, 『여자 없는 남자들』,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2014), 10%


아내가 가후쿠와의 결혼 생활에 얼마나 만족했는지는 알 수 없다. 소설은 철저히 가후쿠의 시각에서만 보여주고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이따금 그녀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 벗어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 가후쿠의 아내에게 바람은 잠시 연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연기를 끝내고 돌아오는 이유. 가후쿠가 연기 후에 늘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고, 그의 아내가 항상 불륜을 단호히 끝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다른 이유도 없어보이는 데 말이다. "그런다고 달리 돌아갈 데도 없잖아"라는 말은 오랜 침묵 끝에 내린 답 치고 초라하다. 마침 내가 같이 읽은 다른 글에서는 '내 것'이라는 소유감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 집에 배어 있는 나로 인해 오랫동안 묵혀진 몸 냄새도 내 코에는 감지되지 않으니 나로선 불쾌할 일이 없고, 어느 구석 혹여 더러운 곳이 있다 한들 내가 쓰는 공간이고 물건이므로 별 상관이 없다. 오랫동안 청소를 하지 않아 먼지가 자욱이 쌓여 있는 내 방 창틀의 불결함도 나로선 그리 불쾌하지 않게 묵과할 수 있는 것도 다 내 생활 범주 안의 더러움이기 때문이다. 더러워도 내 것이라면 괜찮은 법.

- 이석원, 『보통의 존재』, 달(2009), 7%


그들의 삶, 그들의 결혼 생활은 진짜 그들의 것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관성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내의 불륜에 마음이 아파도 돌아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아오기 위해서 그는 새로운 연기(불륜 사실을 모르는 체 하는 연기)를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가후쿠 또는 내가 아무리 추측한다 한들, 가후쿠가 바람 상대와 술친구까지 되었다 한들 가후쿠는, 독자는 결코 진짜 이유를 알 수 없다. 가후쿠가 있는 줄도 몰랐던 녹내장 때문에 시야에 사각지대가 생긴 것처럼,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 결코 의식하지 못하는 맹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만일 그게 맹점이라면 우리는 모두 비슷한 맹점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는 거겠죠.

- 무라카미 하루키, 앞의 책, 16%


말하자면 '아내의 불륜'은 도무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는, 이해하려고 아무리 애써봐도 알 수 없는 지점이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는 '아내의 불륜'이지만, 일상에서는 '상담 시간에 학생이 한 말을 다른 선생님들과 공유하는 담임 선생님', '햄스터가 유행이어서 키웠다는 선배'부터 '설거지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친구'까지 이해할 수 없는 영역과 정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받고자 하는 인간 욕구는 '나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창조해내고 자신의 가족, 연인, 반려자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결혼을 하고나면 세상에 그런 사람은 없다는 슬픈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철저히 혼자인 것이다. 가족 구성원이, 친구가, 연인이, 반려자가 나를 완전히 이해하고 내가 그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한 편의 연극에 몸 담았다가도 막을 내리면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관록의 연극배우처럼.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더 괴로워질 뿐이겠죠.

- 무라카미 하루키, 앞의 책, 16%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