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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Aug 17. 2022

하하 유니버스와 누드화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왼쪽부터 차례대로 「더블유 코리아」1), 「보그 코리아」2), 「마리끌레르 코리아」3)의 최신 화보



바로 이 점이, 광고 속의 그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시선이 비어 있고 초점이 맞지 않은 듯이 보이는 이유의 설명이 된다.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옮김, 열화당(2020), 154면


선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자신감의 고독한 형태이다. 그것은 정확히 말해,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나눠 갖지 않음으로써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당신을 관심을 갖고 보지만 당신은 그들을 관심을 갖고 보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그렇다면 선망을 덜 받게 될 것이다. 이런 견지에서 본다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관료(官僚)와 다를 바 없다. 관료들이 비인격적이면 비인격적일수록 그들이 가진 권력의 환영은 (그들 자신에게나 또는 다른 이들에게) 더욱 커 보일 테니까. 관료들의 권력이 바로 그들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 권위 속에 있듯이, 매력적인 인물들의 힘은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행복 속에 있다. 바로 이 점이, 광고 속의 그 많은 매력적인 인물들의 시선이 비어 있고 초점이 맞지 않은 듯이 보이는 이유의 설명이 된다. 이들은 그들을 매력의 대상으로 만들어 주는 다른 사람들의 선망의 시선을 무관심하게 관망하는 것이다.

존 버거, 같은 책, 154면



왼쪽부터 차례대로 〈대사들〉4),  〈앤드류 씨와 앤드류 부인〉5)




하하 유니버스의 유구한 미술사


이 책을 통해 왜 그동안 수많은 광고 화보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지 알아냈다. 쉽게 설명하자면, 그들은 하하 유니버스 거주민이었다. 하하 유니버스에 사는 하하는 '인기는 많은데 나는 몰라'의 상태이다. 즉, 관심이 일방적이다. 주위에서는 하하에 관심을 보이는데 하하는 누구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


영상 출처: "하하씨는 왜 이렇게 티를 안 내요?" 10년동안 밀어온 세계관 입증한 �하하 유니버스� | 무한도전⏱오분순삭 6)


과거 부유한 지배 계급들은 현재 자신의 부를 후대에 널리 기록하고자 유화를 주문했다. 유화는 모피, 목조, 대리석, 자연 등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그림 속 계층과 그림 밖에서 바라보는 관객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그들은 차별화된 존재이다. 일반 서민들은 갖지 못한 부와 명예와 아름다운 자연의 소유자이다. 그들은 한낱 서민들에게 관심이 없다. 하하 유니버스 거주자들은 그림 속에서 저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심리적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차별성을 드러내었다.


광고는 유화의 역할을 매우 흡사하게 모방한다. 분명한 차이점은 바로 시점이다. 광고는 미래를 보여준다. 해당 제품을 구입하면 소비자가 광고가 보여주는 미래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미래는 결코 오지 않는다.) 어찌됐든 광고는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고, 매력은 선망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그리하여 광고 속에는 또다시 하하 유니버스 거주자들이 등장한다. 유화와 닮은 광고는 유화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가까우면서도 먼 차별적인 선망의 대상'을 그려내고, 거기에 더해 유화의 권위를 빌려오는 효과까지 얻는다.




누드화, 벗은 벗긴 그림


한편, 누드(nude)와 벌거벗은(naked) 몸에 대하여 구분 짓고 차이점을 설명한 부분도 매우 인상 깊었다. 누드는 보여지기 위해 벗은 것이고, 벌거벗은 몸은 그렇지 않다. 즉, 누드는 몸의 소유자와 몸의 주체가 일치하지 않아 몸이 벗겨진 것은 오로지 소유자의 의지인 반면, 벌거벗은 몸은 소유자와 주체가 일치하며 옷을 벗은 것은 주체의 의지이다.


누드(nude)로서 보여진다는 것은 자신의 피부 표현과 몸에 난 털들이 하나의 가장(假裝)이 되고, 그런 상황에서 절대로 떨쳐낼 수 없는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누드는 절대로 벌거벗은 몸이 될 수 없는 운명이다. 누드는 복장의 한 형식이다.

존 버거, 같은 책, 64면


유럽에서 그려진 수천 점의 누드화는 소유자와 소유 대상을 분명히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이다. 그림의 소유주는 그림의 대상이 되는 여성을 소유하였으며, 그랬기에 본인의 관음적 시선을 담은, 오로지 보여지기 위해 벗겨진 탓에 어색한 자세를 취한 여인들의 그림 역시 소유할 수 있었다. 실제로 산드로 보티첼리의「비너스의 탄생」은 소유주가 욕망하던 여인의 얼굴을 화가가 그려넣은 포르노그라피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이 지점에서 에두아르 마네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의 「올랭피아」는 포르노를 마치 대단한 예술작품인 양 '감상'한다던 지배 계급의 위선을 노골적으로 비꼰 작품으로 유명하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우르비노의 비너스〉7), 〈올랭피아〉8)




1970년대에 저자가 강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니 거의 50년이나 된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너무나 새롭고 놀라운 책이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시선, 즉 보는 행위에서 성차(gender)와 직접 관련된 권력의 문제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기한 것이 바로 이 책(존 버거, 같은 책, 189면)"이다. 총 일곱 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고 그중 세 편은 오로지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책이 얇긴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하는 훌륭한 에세이 모음집이다. 예술 작품 감상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든지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더욱이 작품 자체가 아닌 '원본이라는 속성'을 지나치게 예찬하거나 지배 계급의 차별 정당화를 위해 사용되었던 작품 감상론에 대한 비판을 읽으며 그동안 미술관에서 더 유명한 작품, 더 유명한 작가에 열광하던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젠 정말이지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책을 알게 되다니 참 운이 좋았다. 존 버거의 다른 책도 번역이 되어있는 만큼 언젠가 꼭 읽어볼 예정이다.





자료 출처


1) 화보 | 더블유 코리아 (W Korea) https://www.wkorea.com/category/fashion/photo-fashion/

2) 화보 | 보그 코리아 (Vogue Korea) https://www.vogue.co.kr/category/fashion/%ed%99%94%eb%b3%b4-fashion/

3) 패션(fashion) - 마리끌레르 코리아 https://www.marieclairekorea.com/category/fashion/

4) Hans Holbein, 〈The Ambassadors〉(1533), Oil on oak https://en.wikipedia.org/wiki/The_Ambassadors_(Holbein)

5) Thomas Gainsborough, 〈Mr and Mrs Andrews〉(c. 1750) Oil on canvas https://en.wikipedia.org/wiki/Mr_and_Mrs_Andrews

6) "하하씨는 왜 이렇게 티를 안 내요?" 10년동안 밀어온 세계관 입증한 �하하 유니버스� | 무한도전⏱오분순삭 https://www.youtube.com/watch?v=qHRHryTMvco

7) Titian, 〈Venus of Urbino〉(1534), Oil on canvs https://en.wikipedia.org/wiki/Venus_of_Urbino

8) Édouard Manet, 〈Olympia〉(1863), Oil on canvas https://simple.wikipedia.org/wiki/Olympia_(M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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