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오랫동안 잊고 지내다 '제이슨'이라는 인물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 읽었다. 인상적이어서 그런가 제이슨의 분량이 꽤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이슨은 비중이 거의 없었다. 다시 읽어보니 내 기억과 많이 다른 책이라 아쉬웠다. 책은 변하지 않았으니 내가 변한 거겠지.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극복하고 싶은 사회적 문제: 계층, 가족관, 성역할, 옳고 그름 등에 대한 편견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되려 자신의 편협한 시각을 드러내었다. 그중 나는 두 가지 문제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밤하늘의 별
이 책에서 아빠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에게 편지 형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딸들과 있었던 속상한 일, 군대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 후회하는 점, 미안한 점, 자랑스러운 점, 속상한 점 모두. 이게 문제다. 아빠는 '살아있는 사람'이다. 살아있는 딸과 가족이라는 관계를 형성하며 살고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서로 '대화'라는 걸 해야 한다. 친구 관계처럼 대화 없이는 관계도 없다. 말없이도 통하는 가족 그딴 건 없다. 그런데 아빠는 편지를 통해서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난다. 다시 말해, 딸들은 아빠에게서 어떤 진실된 말도 들을 수 없다.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고마우면 고맙다고 말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한다. 미우면 밉다고 말한다. 속상하면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빠는 어떤 솔직한 말도 할 줄 모른다. 감정을 숨기거나 아니면 폭발이다. 아빠는 왜 이렇게 말을 못 할까?
아빠는 딸이 태어나 처음 만난 입체적인 존재이다. 그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면서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이다. 아빠라는 인물은 영화처럼 완벽한 선이나 완벽한 악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이 입체적이라는 걸 딸은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이해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힘들다. 누군가를 미워할 때에도 그렇다. 그러나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일은 견딜 수가 없다.
아빠는 딸의 별이고, 딸은 아빠의 별이다. 왜 둘은 함께 땅에 발 붙이고 살 수 없는 걸까? 둘 중 하나는 꼭 저 머나먼 하늘에 있어야 할까? 죽어서야 같은 세계에 있을 수 있다니, 참 서글픈 일이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 간의 화해를 다루는 이 소설의 가장 주요한 골자는 바로 이 질문이다. 그런데 작가는 낙태는 살인이고, 미혼모 되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게 낫고, 이혼은 흠이고, 하여튼 가족이라는 관념에 온갖 조건을 갖다 붙인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박살내면서까지 아이를 지켜낸 딸, 그 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는 아버지를 보여줌으로써 가족애를 얘기한다. 이런 가족관은 기괴하다. 자기 인생뿐 아니라 가족 인생까지 다 망가뜨리는 게 무슨 사랑의 힘인가? 그건 사랑의 저주다.
딸은 재벌과 억지로 결혼하고 결국 이혼하여 영영 다른 세계로 나뉘었다. 그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딸의 아빠, 동생, 그리고 제이슨이다. 딸, 아빠, 동생의 관계는 아빠가 꾸린, 딸에게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가족으로 맺어져 있다. 딸과 제이슨이 친구가 된 것은 발레에 대한 집착 어린 사랑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들과 딸은 모두 같은 세계 사람이다.
낙태, 미혼모, 결혼 생활, 이혼에 관한 가치관을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의견이 엇갈리지만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는 가족의 이야기였다면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재벌과의 파국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를 극복한 상호 이해도 좋다. 서민과 재벌의 간극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은 서로 다른 법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나와 다른 세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 자아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사랑의 힘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랑은 이 책에 없다. 옛날 소설을 살펴보면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 말할 만큼 왼쪽은 틀린 쪽으로 여겨졌다. 이 소설의 아빠도 딸도 왼쪽부터 신발 신는 것을 징크스로 여긴다. 딸은 '낙태가 살인이기' 때문에, 즉 아이를 낳는 것이 옳은 행위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옳은 행위와 틀린 행위를 구분함으로써 가족 간의 관계마저 옳고 그름으로 구분 지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는 상대방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라는 이치를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한다. 부부로, 모자의 관계로, 애인과, 아니면 홀로 성인이 된 딸이 자기만의 가족(세계)을 일구면서 기존의 가족과 화해한다는 내용이 오늘날 진정으로 필요한 가족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