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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화 Dec 10. 2023

우주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천선란의 「노을 건너기」와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

퀸은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유년 시절을 죽였다. (Mam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 Queen, 〈Bohemian Rhapsody〉 中) 헤르만 헤세의 새는 태어나기 위해 자신의 세계를 파괴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中)


정녕 유년 시절은 극복의 대상이자 나를 찾기 위한 적일까, 어린 '나'를 지금의 '나'로부터 떼어내야만 할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처 입은 어린이인데.


그러나 퀸도 헤세도 시간의 순서를 부정할 순 없다. 유년 시절이 먼저 있어야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은 그저 잔해로 남아있지 않는다. 유년은 '나'라는 존재의 증거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한다. 어린 '나'의 상처를 딛고 '나'로 거듭난 지금, 천선란은 소외되고 잊혀진 어린 '나'에 주목한다. 「노을 건너기」는 자기 부정 이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큼지막한 활자에도 100쪽이 안 다.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단 두 명, 공효와 어린 공효이이다. 그들의 무대는 공효의 무의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공효는 먼 우주여행을 앞두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다. 어린 공효가 자라 공효가 되었지만, 세월은 그들을 같은 사람이 아닌 둘로 만들었다. 공효는 더 이상 거미를 무서워하지 않고 어린 공효가 거미를 무서워했다는 사실도 잊었다. 그에게는 이제 다른 무서운 것들이 많았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란, 기록이나 시험 통과가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오면 찾아오는 무기력감, 예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자기혐오, 앞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란 확신 따위였다.

천선란, 「노을 건너기」, 창비(2023), 47면


그런 공효가 어린 공효의 세상에서 그에게 말을 걸고, 함께 손잡고 걷는다. 공효뿐만이 아니라 어린 공효도 함께 노을을 건넜다는 것은 상징적이다. 공효는 자기 긍정을 위해 부정해왔던 지난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마주한다. 공효는 어린 공효와 함께 타란툴라를 물리치고 마침내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나는 너를 좋아해, 공효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너를 너무 좋아한단다.

천선란, 「노을 건너기」, 창비(2023), 66면


이 소설과 꼭 닮은 노래가 바로 아이유의 「아이와 나의 바다」이다. 이 노래의 제목은 아이유에 의해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이유는 I-U, 노래로 나와 당신을 잇는다는 뜻의 예명인데, 아이유가 '아이'와 '나'의 바다를 노래함으로써 '나'는 가수인 아이유를 넘어 청자를 포함하게 된다.


이 노래에서도 '아이'는 '나'가 되는 과정에서 점차 '나'와 멀어진다.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은 어리고 약한 '아이'를 부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던 마음으로부터 하루씩 멀어진 대가로 얻은 것이 고작 바다의 흔적만이 남은 '나'라는 사실은 깊은 슬픔과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쌓이는 하루만큼 더 멀어져
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어린 날 내 맘엔 영원히
가물지 않는 바다가 있었지
이제는 흔적만이 남아 희미한 그곳엔


그럼에도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에 나를 붙잡아 주는 것은 되려 내가 지나온 내 안의 '아이'이다. 넓은 세상, 드넓은 우주를 살아갈 때에 우리는 길을 잃고 갇히기도 한다. 이를 담대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어린 공효'가 거미를 극복했기 때문이고, '아이'가 오랜 시간을 건너 나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선 너머에 기억이
나를 부르고 있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목소리에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공효'가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힘은 그가 '어린 공효'를 끌어안고 자신의 외로움과 나약함과 그 근원까지 사랑하는 데서 나온다. 어둠은 더 이상 나를 가두지 못한다. 유년 시절은 나의 지도이다.


이런 책이 출간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에 공감하는 까닭은 우리가 자라오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일을 준비하기에도 벅찬 오늘날 어제를 돌보기란 쉽지 않다. 하루에만 수십 장씩 생성된 사진들은 인화되지 않은 채 잊힌다. 그렇게 미뤄둔 우리의 과거는 숙제처럼 마음 한구석에 쌓여 있다. 이를 보듬어주는 작품은 마치 노을 같아서 슬프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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