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자 메이 올컷, 『작은 아씨들』
로리는 발랄한 선율로 바꿔 몇 분 동안 미친 듯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대며 씩씩하게 연주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에 마치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줄래?"
뜻만 다를 뿐 로리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로리는 무너지고 말았다. 음악은 뚝 끊겼고 연주자는 어둠 속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루이자 메이 올컷, 앞의 책, 735면
조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이야깃거리를 쥐어짜내려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볕이 잘 드는 창가로 들어온 따스한 볕이 조의 뺨에 묻은 잉크를 문질렀다. 로리는 여느 때처럼 그녀의 옆에 누워 조가 막 건네준 그녀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었다. 그들의 귀여운 동생 베스는 늘 그랬듯이 소설 속에서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는 중이었다. 그러나 좀 더 건강하고 생기있어 보였다. 그녀의 깊은 속마음을 꿰뚫어보는 소설가의 애정어린 표현에서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듬뿍 묻어났다. 병아리빛 햇살이 어느덧 붉게 물들고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 로리는 자신의 감상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 로리는 이제 조의 글에서 눈을 떼고 조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조의 얼굴 여기저기에는 잉크와 햇살이 얼룩덜룩 묻어 있었다. 가엾게도 그녀의 펜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고 종이 위에서 머뭇대기만 했다. 골몰해있는 조의 흰 종이 앞에 흰 손이 불쑥 나타났다.
"테디! 손에 잉크 묻잖아."
"네 멋진 손을 잡을 수 있다면 얼룩쯤이야 아무래도 괜찮아."
로리는 펜을 쥔 조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짐짓 이전의 소년같은 말투로 말했다.
"나를 방해하면서 소년인 척 해도 소용없어. 너는 이제 다 컸는걸, 로리."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친애하는 로렌스 부인. 난 더 이상 할 것도 없어. 피아노 쳐줄까?"
"좋아, 테디. 빠르고 경쾌한 노래를 들려줘. 그런 노래를 들을 땐 박자에 맞춰서 펜도 빠르게 움직이는 기분이거든. 내 펜은 지금 꼼짝도 안 해."
로리는 놓기가 자뭇 아쉬운 듯 조의 손을 한 번 힘주어 잡고는 자신의 손에 갇힌 포로를 풀어주었다. 그러고는 저편에 있는 피아노로 가 연주를 시작했다. 이전에 로리가 조를 잃고 쳤던 바로 그 노래였다. 그는 조를 찾는 마치 부인의 말을 듣고 차마 연주를 끝내지 못한 채 절망의 벽 앞에 무참히 무너졌었다. 그러나 지금, 같은 피아노에서는 그때 멈춰버린 부분을 넘어 계속해서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소리가 어찌나 감동적인지 정원의 참새들이 창가에 모여 앉아 듣는 듯했다. 조는 더 이상 써지지도 않는 펜을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훌륭한 연주자의 공연을 감상했다. 악보가 넘어갈 즈음, 로리는 목을 가다듬고 자신의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조,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