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나드 쇼, <피그말리온>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자리에서는 이렇게, 저런 자리에서는 저렇게, 가장 적합하다고 불리는 역할에 맞는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말이다.
밖에서 아무리 괜찮은 척, 밝은 척, 대담한 척을 해도 나의 내면은 결국 그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설로 좌중을 휘어잡는 말투, 매력적이고 당당한 행동, 자연스러운 미소와 제스처 등을 보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고개를 든다.
말투나 버릇의 변화만으로도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수준으로 바뀔 수 있을까?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희곡 <피그말리온>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냉소적으로 답한다.
음성학자인 헨리 히긴스는 런던의 빈민간에서 발견한 꽃 파는 처녀 일라이자를 두고 내기를 한다. 6개월이면 그녀를 공작 부인으로 보이게끔 사람들을 완벽히 속일 수 있다는 것.
그의 자신감은 다름 아닌 발음 교정에 있었다.
당시의 런던은 신분제도가 남아 있던 사회로, 상류층들은 각종 행사나 약속에 참석하기 위해 적합한 예절과 어법을 익혀야 했다. 히긴스는 일라이자의 참혹한 사투리를 완벽한 영어 억양으로 고치고 태도를 바꾸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녀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단언한다.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일라이자는 매우 독특하고도 강한 사투리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격이 매우 억세서 교양있는 자리에서도 더럽거나 천박한 말을 함부로 던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일라이자를 몇 달 훈련시킨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자기 어머님이 참석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 데려간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패션과 우아한 인사 태도에 탄복한다. 하지만 곧 그녀는 자신의 고모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중에 잔혹하고 불쾌한 단어들을 섞어 쓰기 시작한다. 심지어 그녀는 사람들에게 떠나는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터프한 욕설을 섞어 'X나게'라는 말을 던진 뒤 자리를 뜬다.
그러나 6개월 뒤, 히긴스는 완벽하게 성공한다. 어떤 행사 자리에 일라이자를 데려한 히긴스는 그곳에 십여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통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 통역사의 일은 다름아닌 파티에 참석한 고객들의 신상을 파헤쳐 집주인 여사에게 알려주는 역할이었다. 히긴스는 일부러 통역사에게 일라이자를 보여주고, 그녀가 누구인 것 같냐고 물었다. 통역사는 그녀의 완벽한 영어를 보아하니 영국 사람이 아니라 해외 태생으로 영어를 나중에 배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라이자의 단호한 눈빛은 왕족의 혈통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통역사는 일라이자가 헝가리의 공주라고 확신한다.
작품의 진짜 스토리는 여기서부터다. 파티에서 집으로 돌아온 히긴스는 환호하고, 자신의 능력에 축배를 올린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눈물을 흘리고, 슬리퍼를 집어던지고,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하층민도 아니고, 상류층도 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결국 마음을 추스린다. 그녀는 히긴스가 자신에게 대한 행동을 떠올려 본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순전히 자신의 실험을 위한 도구로서 생각하며, 게임이 성공한 뒤에는 자신의 능력에만 심취해 있었다. 그는 일라이자에게 수고했다는 한 마디 말 없이 그녀를 인형처럼 다루는 기계적인 사람이었다.
반면, 히긴스의 곁에는 절친한 피커링 대령이 언제나 함께했는데, 그는 일라이자를 언제나 귀부인처럼 존중해 주었다. 그는 일라이자가 꽃을 팔던 시절부터 '둘리틀 양'이라 호칭했으며, 종종 문을 열어 준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는 등 예절을 표했다. 결국 꽃 파는 여자가 되느냐, 공작 부인이 되느냐의 문제는 다른 이에게 어떻게 대우받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저는 히긴스 교수님께는 언제나 꽃 파는 처녀일 거예요. 왜냐하면 그분은 그를 언제나 꽃 파는 소녀로 대하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대령님께는 숙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대령님은 저를 언제나 숙녀로 대해 주셨고, 앞으로도 그러실 거니까요."
결국 일라이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갈 지에 대해 결정해 나간다. 그녀는 새롭게 얻은 매력을 이용해 결혼을 해서 신분 상승 하라는 히긴스의 이야기를 거절하고, 무일푼이지만 자신을 순수하게 사랑해 왔던 청년과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또한, 히긴스가 자신에게 알려준 지식을 이용하여 신문에 6개월이면 억양을 고칠 수 있다는 광고를 내고, 선생이 되겠다고 한다. 히긴스가 이러한 결정에 길길이 날뛰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일라이자는 자신에게 돌아오라는 스승의 요청을 만류하고, 자신의 갈 길을 떠난다.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
예전에 영문과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마이 페어 레이디>를 틀어 주셨다. 일라이자가 슬리퍼를 집어던지는 장면에서, 교수님은 영화를 잠시 멈추고 학생들에게 여자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냐고 질문했다. 그 때 학생들이 여러 대답을 내놓았지만, '교수님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한 사람은 한 명 밖에 없었다.
그 때의 일을 생각하니, 나를 포함하여 그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얼마나 히긴스와 같은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워진다. 이론과 논리에만 골몰하면 인간적인 냄새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한 마음으로 누군가가 연구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면, 다른 누군가가 쉽게 상처받고 방황하게 될 수도 있다.
'성격은 바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나도 내 성격의 단점들을 바꿔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습관이나 태도라도 바꿔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꽤나 어려웠다. 나에게 걸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아 불편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진정한 내 성격' 운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나와 잘 맞는 좋은 사람들 곁에서, 주체적으로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가면서 사는 것, 그게 결국 소설이 말하는 답 중의 하나가 아닐까? 타인을 존중하고, 그만큼 나 자신도 존중하는 태도만 기억해도 훨씬 멋있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흔하지만, 신데렐라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는 스토리는 많지 않다. 사회적 지위 상승과 경제력을 모두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자기 발로 걷어차는 것은 일어나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반전 스토리가 온당한 논리를 갖추려면 작가의 뛰어난 설명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단순한 꽃 파는 처녀 이야기를 명작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짧은 희곡에는 런던의 여러 사회 문제가 비판되어 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개인과 개인 사이의 감정 문제를 통찰력있게 풀이되어 있다.
히긴스는 일라이자를 공작 부인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그의 노력은 외적인 것에 국한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친구인 피커링 대령은 일라이자를 언제나 고귀한 사람인 것처럼 대함으로써 진정으로 그녀를 감동시키고 변화시켰다. 타인을 정말로 가치있게 대하는 피커링 대령의 태도야말로 전설 속 피그말리온의 기적을 실현하는 비법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