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약점이 드러나야만 하는 순간이 되면, 그러한 순간을 회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학창시절 나에게는 발표를 해야할 때가 그러한 순간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를 들키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약점을 숨기려는 마음의 방어벽이 두터워질 수록 다른 사람에 대한 분노와 상처가 커지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라는 강요가 주어질 때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거나 우울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면, 기억 속 부끄러움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다. 책에서는 누구에게나 수치심에 대한 방어 기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설령, 그 사람이 겉으로는 강하고 뚝심있는 인물처럼 보일 때조차도 말이다.
책의 배경은 1950~60년대 독일. 줄거리는 주인공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열 다섯 살 때 길가에서 구토를 할 정도로 아픈 위기를 맞았으나 이웃에 사는 한 여성에게 구출된다. 여자는 주인공을 보살펴주고 부축하여 집에 데려다 주었다. 이후,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여자를 다시 찾아간 주인공은 그녀가 스타킹을 올리는 장면을 보고 처음 느끼는 흥분에 놀라 집으로 도망쳐 돌아온다. 이후, 다시 여자를 찾아간 주인공은 그녀의 주도에 이끌려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된다.
서른 여섯 남짓한 그녀의 이름은 한나였다. 병약하고 섬세한 주인공에게 한나는 강인하고 튼튼한 한 마리 '말'을 연상케 했다. 주인공은 한나의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하나, 그녀는 한 번도 좀처럼 만족스런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저 과거에 지멘스라는 대형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돌연 군대에 들어갔으며, 이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전차 차장 일을 하고 있다는 것뿐. "꼬마야, 별걸 다 알려고 하는구나!" 그녀가 언제나 주인공의 물음에 답하는 말이었다.
한나가 주인공에게 부탁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의 목소리로 침대맡에서 책을 읽어 주는 것. 사랑의 의식을 나누기 전, 그들은 언제나 고전 소설이나 역사서의 명작들을 읽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했다. 한나는 책 속의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분노하는 감정을 드러내며 책 속의 모든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빨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한나가 훌쩍 떠나 버린 것이었다. 주인공은 한나가 일하는 전차 사무소로 찾아갔다가 그녀가 승진 권유도 고사하고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음을 알게 된다.
주인공이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그는 이제 법과 대학생으로서 재판을 방청하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고인의 자리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한나였다. 그녀는 나치 범죄자로 기소된 것이었다. 한나의 가장 큰 죄목은 큰 교회에 유태인 여성들을 가두고 불에 타 죽게 내버려둔 것이었다.
주인공은 재판 과정에서 한나가 자신의 죄를 모두 덮어쓰게 될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건 그녀가 범죄와 관련된 보고서를 직접 썼냐는 질문에, '예스'라고 답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 동안 숨겨져 있던 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그건 한나가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진실을 아는 것은 오직 그 혼자였다. 그녀가 늘 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했던 것과, 지멘스에서 승진을 제시받았는데도 갑자기 입대해 버린 일이나, 전차 회사의 승진 제안에 도망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녀는 삶에서 더 나아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걸 움켜쥐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주인공은 무엇이 진정 한나를 위한 길인가 되묻게 된다. 그녀가 교회에 여성들을 갇힌 여성들을 풀어주지 않았던 것은 전쟁 상황에서 제대로된 판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결코 나쁜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건 그녀의 동정심 많은 성격을 알고 있는 주인공만 말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나치 범죄자로서 이전 세대의 죄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역사적 문제였다.
게다가 주인공은 한나가 자신의 약점에 대한 수치심을 감추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법정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매우 꼿꼿한 자세와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일관된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한나를 위해 목소리를 내거나 그녀를 설득하지 않는다. 재판에서 그녀는 죄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며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8년 후, 주인공은 복역 중인 한나에게 책 읽는 내용을 녹음한 카세트 테이프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한나로부터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답장을 받고 그녀가 글자를 익히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 둘만의 비밀스러운 의식은 무려 10년 간 지속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한나에게 단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는 한나를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사랑으로만 남겨두고 싶지, 과거 시대의 죄악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후, 주인공은 한나가 가석방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린다. 그러나 출감일에 수용소에 도착한 주인공은 전날 밤 한나가 자기 방에서 목을 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나의 감옥을 찾은 주인공은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지역신문에 등장한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 남겨진 것을 발견한다. 비로소 주인공은 한나가 자신과의 사랑을 오랫동안 소중하게 간직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용소장은 한나가 감옥에서 오랫동안 주인공의 편지를 간절히 기다렸다고 말한다. 그녀는 죽는 날까지 속마음을 남에게 비추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만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교회 화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유대인 모녀 중 딸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드러낸다. 유산의 수령인은 그 기금을 유대인 문맹 퇴치 재단에 기부함으로써, 한나의 뜻을 어느 정도 기리고자 한다.
자존심은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될 때도 있지만, 돌연 강한 타격을 입힐 때도 있다.
한나의 재판은 언뜻 보면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한 사람의 몇 십년의 세월을 앗아가버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사의 문제보다 중요한, 수치심을 가리는 문제. 그 점이 한나의 인생을 뒤흔드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소설은 개인적으로 마음이 따스한 사람이라도 시대적 흐름과 치명적 약점 때문에 크나큰 비극을 맞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이 한나의 선택을 존중했던 이유처럼, 어떤 이에게는 옳고 그름을 떠나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일. 그것이 스스로를 가장 위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한나의 죄에 대한 직접적 가치 판단에서 늘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이전 세대의 죄를 떠맡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과 법무 종사자로서의 합리성이 고개를 든 까닭이다. 대신 그는 한나에게 카세트 테이프를 전달하는 것으로 죄책감을 달랜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향수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녹음 테이프를. 그녀의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 언제나 이상화된 존재로 남아 있었다. 그건 주인공이 한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주인공은 한나를 개인적으로는 사랑했지만, 사회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훗날 한나는 재판에서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주인공과 한나의 간극은 전쟁 전후 세대 간 이해와 합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한나처럼 크나큰 사건에 휘말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약점들을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이처럼 부끄럽게 생각하는 점들을 노출시키기 보다는 차라리 회피하고 위장하려 한다. 또한, 약점을 들춰내려는 사람을 놀라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내면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렸을 때, 어떻게 변화할 지는 우리 자신도 모른다.
한나의 약점처럼, 우리의 부족함도 안타까움으로 보듬어줘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나를 깎아내리고 작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상처로서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말이다. 약점이란 결국 아픔을 만들기 마련이니, 내가 먼저 손 내밀고 이해하는 건 어떨까? 소설에서 보듯, 시대와 상황이 만들어낸 작은 상처도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기에 충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