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사랑하는 관계에는 언제나 싸움이 수반된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경험을 하면서 몇십 년을 살아왔으니 그런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연애에서의 싸움은 생판 남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게 아니라서, 약간의 긴장감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듯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특징이 있다. 결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싸움은 자기의 가치관을 지키는 일이라 혼신 서약을 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유지되기도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는 나와 상대방의 생각이 조금도 좁혀질 가능성이 없을 때가 있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이처럼 절대 타협되지 않는 한 문제로 전투를 벌이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영화로 각색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워낙 아름다운 여배우가 출연해서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해서 그런지, 영화 때문에 오히려 소설의 가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여배우의 외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가치관과 매력이 부각된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여성은 재미있는 말솜씨, 다재다능함, 남성 못지 않은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뭇 남성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것으로 묘사된다.
주인공 덕훈은 어느 날,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프로그래머 인아와 술을 마시게 된다. 그녀는 평소에도 회사에서 싹싹한 성격과 센스있는 일처리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덕훈은 인아와 술을 마시면서 그녀도 자신처럼 유럽 축구 열혈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축구에 대한 열띤 토론 끝에 가게가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인아는 자신의 집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인아의 집을 방문한 덕훈은 그녀의 집에 꽂힌 수많은 책을 보며 그녀의 지적인 면모에 감탄하고,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에 설렌다.
그렇게 둘은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인아는 사회에서 보기 힘든 자유분방한 연애관을 지니고 있었다. 덕훈에게는 '다른 사람하고도 사랑할 수 있다'며 미리 자신이 바람 필 것을 예고하기도 하고, 일주일에 몇 번은 술을 마시느라 연락두절이 되곤 한다. 이런 경우를 처음 겪어보는 덕훈은 처음에는 안절부절하지만, 점차 그녀를 위해서 '쿨한 사람'이 되어 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인아는 변하지 않고 자신의 연애관을 고수한다. 질투심 때문에 덕훈은 인아를 추궁하게 된다. 서로 연애관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어긴 것이었다. 결국 인아는 다른 남자하고도 잤다고 실토한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덕훈은 그 자리에서 이별을 통보하지만, 몇 주 후, 결국 그리움 때문에 다시 돌아온다.
이후, 덕훈은 인아의 외도를 막기 위해 그녀를 결혼이라는 무덤으로 데려가리라 결심한다. 끝없는 회유를 듣고 처음엔 결혼을 거부하던 인아의 마음이 점차 돌아서고, 덕훈은 그녀의 자유로운 사생활을 보장해준다는 약속과 함께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했다고 사람이 변하지는 않았다. 인아는 계속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해 나갔으며, 덕훈에게는 경주로 내려갈 테니 주말부부를 하자고 한다. 덕훈이 허락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결국 원하던 경주로 내려간 인아는 그 곳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렇다고 그녀가 덕훈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덕훈에게 '이 사람하고도 결혼하고 싶다'고 통보한다.
덕훈은 말도 안되는 상황과 억울함 속에서 인아와 이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녀를 다른 남자에게 넘겨줄 수도 없이 발만 동동 구른다. 울며 겨자먹기로 그는 인아의 결혼을 허락한다. 하지만 그는 호시탐탐 다른 남편으로부터 인아를 뺏어올 궁리를 하며, 극심한 질투를 느낀다.
인아는 아이를 낳고도 달라지지 않았다. 덕훈은 아이가 자신의 아이인가 유전자 검사를 하고 싶어 하지만, 인아는 극구 거절한다. 오히려 그녀는 탁월한 역사적 지식을 바탕으로, 개방적인 결혼관을 가진 사회가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설명을 들려준다. 어이도 없고 분한 덕훈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아가 다른 시댁 행사에 참여할 때 자신과의 결혼에 대한 모든 증거 자료를 내놓고 판을 깨겠다는 결심을 한다.
하지만 덕훈은 마음이 모질지 못했고 아직은 인아에 대한 그의 사랑이 너무 컸다. 그는 잔칫상을 뒤엎는 계획을 포기한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간간히 인아에게 심통을 부리는 것 뿐이다. 인아는 밖에 나가서는 늘 가식적인 처신을 잘 했기에,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덕훈에게 잘하라고 잔소리하는 실정이다. 덕훈은 비밀을 터 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인아의 다른 남편 빼고는. 결국 세 사람은 바깥의 눈치를 보며 아파트에서 아이를 함께 돌보며 기묘한 만남을 이어간다. 인아는 덕훈에게 이토록 불편한 한국을 벗어나 뉴질랜드로 가서 셋이서 살자고 한다. 덕훈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중에 해외에 나가서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며 상념에 잠긴다.
<아내가 결혼했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 점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가 흥행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사회적 통념을 깬 발상의 전환은 신선하며, 남녀관계의 싸움을 마치 축구 게임처럼 비유한 전개는 흥미진진하다. 보통, 축구를 볼 때는 심각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파워와 기술의 대립에 중점을 두고 관전하게 된다. 소설을 보는 기분은 마치 축구 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소설에서 인아와 덕훈은 둘다 축구를 좋아하지만, 서로 다른 팀을 응원한다. 이처럼, 그들은 매우 같으면서 또 다른 인물들이다. 이들은 축구에서 경쟁하듯, 사랑에 있어서 크게 경쟁한다.
덕훈과 인아는 몇 가지 주제를 놓고 극심하게 대립한다. '결혼을 하는게 좋다' 와 '하지 않는게 좋다', '결혼을 두 번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와 '그런건 중요치 않다' 등등. 이러한 싸움에서 그들의 가치관은 심각하게 비교된다. 덕훈은 상식을 들어 어불성설이라 비판하는 것도, 인아는 전혀 개의치 않고 해박한 문화인류학적 지식으로 방어해낸다. 이런 점에서 인아는 흔한 불륜 드라마의 여주인공처럼 감정의 폭풍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과도할 정도로 냉정하고 차분해보이는데, 이는 덕훈이 주로 황당함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과는 차이를 보인다. 결혼과 연애에 대한 그녀의 가치관은 너무나 확고하여 이는 이성적인 논리와 궤변으로 얼마든 지켜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사회적 관습이나 법도 개의치 않고, 오직 집요하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을 보여준다.
인아의 현란한 말솜씨에 덕훈이 할 말을 잃는 모습은 사회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통념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것인지 보여준다. 독자로서 인아의 궤변에 휘말려들지 않는 방법은 오직 덕훈의 기분에 공감하는 것 뿐이다. 그는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자존심 강한 성격을 갖췄으며 특별히 가부장적이지도 않은 남성이다. 그래서 독자는 그가 아내의 황당한 요구를 수용하는 이유도 그의 속마음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된다. 그의 나레이션에서는 억울한 감정과 이성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숱하게 드러나지만, 그와 반대로 아내를 떠나려고 해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비난도 표현된다. 이렇듯 여리고 감정적인 남편과는 반대로, 그의 아내는 자기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슈퍼우먼과도 같다. 아내는 두 집 살림을 해내며 두 개의 시댁을 모시고, 가면을 쓴 채 거짓된 사회생활도 완벽하게 해 낸다. 게다가 덕훈에게 여자가 생긴 것을 보고 그 관계를 정리하도록 밀당함으로써 탁월한 지략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타고난 승부사인 그녀에 비해 덕훈은 턱없이 밀리는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결혼이라는 판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게임 상대이다.
연인의 외도에 반응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고 한다. 어떤 이는 곧장 헤어지기도 하고, 어떤 이는 한 두번 용서해 주기도 한다고 한다. 사회마다 다르겠지만, 대체로 외도는 다른 이의 마음에 크게 상처를 주고 만다. 상대를 진정 좋아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아내가 결혼했다>의 인아는 과연 덕훈의 가치관을 존중했다고 볼 수 있을까. 조금도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고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내는 남편을 절대 잃고 싶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던게 확실하다. 하지만 남편은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아내를 갖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어리석을 정도로 상대의 손을 놓지 못하는 사랑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한다. 현실에도 이런 사랑이 있을까? 요즘에는 오히려 손해보지 않으려는 마음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사랑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벼운 사랑도 깊은 사랑만큼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자신의 행복을 유지하면서 타인의 행복도 존중해주기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너 사이의 적당한 균형점을 평생 찾아가는 것, 그것이 결혼이란 여정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