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꺼요, 로라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 동물원>

by L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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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누구에게나 안락한 보금자리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족을 지옥으로 느낄 수도 있다. 젊은 시절 부모와 갈등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의 제대로된 소통이 이뤄지기란 어렵다. 희곡 <유리 동물원>은 가족 간 불화로 빚어진 비극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경제 공황이 극심하던 1930년대 미국, 어머니 아만다, 누나 로라, 남동생 톰으로 이뤄진 한 가정이 있다.


어머니 아만다는 젊었을 때, 여러 농장주 아들들의 구혼을 물리치고 가난한 전화국 직원과 결혼했다. 하지만 남편은 곧 자식들을 두고 도망쳤다. 홀로 남은 아만다는 딸 로라를 실업 학교에 보내어 전문직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딸의 심약한 성격 탓에 그 계획은 실패했다. 이제 아만다는 로라를 좋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아들 톰에게 누나의 남편감을 집에 초대하라고 들들 볶는다.


아들 톰은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다. 신발 공장에서 날마다 고되고 단조로운 일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노고를 알아주지 않고 퇴근 후에도 공부하라며 닦달한다. 그래서 톰은 퇴근하면 집을 탈출해 영화관에 가서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그가 아버지처럼 술과 모험을 좋아하게 될까봐 늘 잔소리를 퍼붓는다.


딸 로라는 어렸을 때 병에 걸려 불행하게 절름발이가 되었다. 게다가 그로 인해 심한 낯가림도 얻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첫사랑 짐에게 제대로 말도 못 붙여 보았고, 실업학교에 가서는 두려움 때문에 시험을 칠 때마다 구토를 하다가 결국 자퇴했다. 이제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온 종일 집 안의 유리 동물 수집품을 닦고 돌보는 것이다.


The-Glass-Menagerie-1973-1.jpg 영화 <유리동물원(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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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톰은 어머니의 채근에 못이겨 한 공장 친구를 집에 초대하게 된다. 어머니는 뛸듯이 기뻐하며 집안에 비싼 가구를 들이고 로라의 예쁜 드레스를 사는 등 호들갑 떤다. 하지만 로라는 톰의 친구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크게 놀라며 도망쳤다. 초대 손님은 바로 첫사랑 짐이었다. 어머니는 로라의 간곡한 부탁도 거절하고 로라와 짐이 단둘이 있는 시간을 마련한다. 짐은 로라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하지만 곧 그는 문득 생각난 듯 자기는 약혼자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그 집을 떠나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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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 아만다는 톰에게 한바탕 모진 말을 내뱉는다. 하지만 톰의 분노도 폭발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 집을 떠나 버린다. 그리고 전세계를 여행하며 모험을 한다. 하지만 가끔 그는 집에 두고 온 갸냘픈 누이를 걱정한다. 구시대의 산물인 촛불을 여전히 키고 있을 로라, 어머니의 잔소리를 홀로 듣고 있을 로라, 깨지기 쉬운 유리와도 같은 로라... 톰은 '이제는 촛불을 꺼요... 안녕!' 이라는 독백을 누이에게 바치며 그리워한다.






희곡 <유리동물원>의 인물들은 현실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도피처를 마련해두고 있다. 어머니는 화려했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톰은 영화관으로 달려가며, 로라는 유리동물들과 대화하며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어머니에게 고통이란 가난이며, 톰에게 고통은 공장의 단조로운 노동이고, 로라에게 힘든 순간은 사람들과 교류해야 할 때이다.


톰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자기를 너무나도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톰은 아만다를 도와주지만 그녀는 톰이 영화관에 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아만다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의 과오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도 같다. 그래서 유일한 희망인 아이들을 통해 영광을 재건하고자 한다. 그녀는 톰에게 기독교적으로 경건하고 성실하게 살도록 강조한다. 본인은 젊은 시절 잘생긴 외모만 보고 결혼했으면서도, 아들에게는 현실적인 삶을 강요한다. 지나간 삶에 대한 후회와 실패의 반복에 대한 불안이 가득하다.


톰과 아만다에게 로라는 어떤 존재일까. 톰이 로라가 '절름발이다,''수줍음을 지나치게 탄다.'고 하자, 어머니는 '그게 바로 장점이야!' 라고 한다. 어머니는 로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제대로 인식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사실 로라는 연애나 취업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내성적이다. 하지만 아만다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기대에 끼워맞추려 한다. 톰은 떠나고 나서도 자신이 없는 집에서 로라가 억압받으며 살아갈 것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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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가족은 TV에만 나오는 것일까? 실제로는 비정상적인 가족이 훨씬 많을지도 모른다. 독특한 성격의 일원이 한 명만 있어도 나머지 가족들은 피곤해지고는 한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우리 위에 군림하고 있어 뭐라 비난할 수도 없다.


부모 자식은 고마움과 죄책감이 오랜 세월 동안 얽혀 있어 쉽게 남남이 될 수 없는 관계다. 하지만 작품에서 톰은 과감하게 가족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떠났다. 작품을 읽다 보면 옳고 그름을 떠나 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다. 그와 어머니의 소통의 단절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톰은 떠나고 나서도 로라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누이는 아무 잘못이 없었다. 톰은 로라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는 것으로 죄책감을 달랜다.


가난이라는 시대적 고통, 불행한 가정, 이러한 태생적인 불운을 마주한다면 과연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만약 어머니가 톰의 이야기를 조금만 귀 기울여 들어주었어도, 결말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러한 한 가족의 비극은 곧 어느 가정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독자로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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