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야마 아마리,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물 아홉은 정말 ‘아홉수’인 것일까? 내 기억에도 스물 아홉은 찌질하고 피곤한 시기였다. 사회초년생에 결혼적령기라는 고된 변수들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른이라는 숫자가 유독 민감하게 다가왔다. ‘서른즈음에’라는 노래도 너무나 우울하지 않은가. 혹시 이처럼 앞날이 캄캄하다거나, 지나간 시간이 후회된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라는 소설을 한번쯤 읽어봐도 괜찮을 것 같다.
하야마 아마리는 파견 사원으로, 스물 아홉의 생일을 홀로 기념하기로 한다. 그런데 케이크 위 딸기가 똑 하고 떨어져 굴러가 버린다. 달려가 집어든 순간, 머리카락 한 올이 달라붙어 있었다. 딸기를 씻다가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아마리는 순간 싱크대에 비친 자신을 쳐다보았다. 스물 아홉에 변변한 직장 없이, 남자 친구도 없고, 폭식증으로 70kg까지 비대해진 몸을 가진 여자.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 아마리는 자살을 생각한다.
그 때, TV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풍경이 펼쳐진다. 죽기 전에 못 가보면 억울할 것 같은 여행지. 아마리는 무슨 일을 해서든 라스베이거스는 밟고 죽겠다고 결심한다. 바로 인터넷에 ‘고수익’이라는 검색어로 부업을 찾아보았다. 딱 1년만 돈을 벌고 여행을 떠난 후, 미련없이 세상을 뜨는거다.
아마리가 찾은 고수익 부업은 긴자 호스티스였다. 하지만 내로라하는 업소에서 뚱뚱한 여성을 받아줄 리 없었다. 수많은 가게에서 퇴짜를 맞고 난 후, 기적처럼 그녀는 일자리를 얻는다. 그 날부터, 낮에는 파견 사원, 밤에는 호스티스 일을 하는 이중 생활이 시작된다.
호스티스 일을 하며 아마리는 수많은 사연을 지닌 여성들을 만난다. 그들에게는 아마리보다 더 아픈 사연들이 있었다. 남편 빚으로 고통받는 여자, 아이 둘을 키우는 미혼모… 아마리는 그들과 진정한 친구가 된다. 이곳에서 아마리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1년 후, 아마리는 모아둔 돈을 몽땅 싸들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난다. 그동안 그녀는 긴자에서 봉급을 올리기 위해 체중을 감량했고, 직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격증도 취득했다. 주말에는 누드 모델 일까지 했다. 이제 아마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밤 새워 블랙잭을 한 후, 아마리는 수중에 5달러가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다 잃지 않은 게 기적이었다. 아마리는 바로 그 날 아침이 자기가 자살하기로 결심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하지만 손에 남은 5달러가 그녀에게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 순간, 아마리는 지금까지 겁 없이 살아온 만큼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간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느낀다.
스물 아홉 살에 이 책을 읽었을 때와 지금은 사뭇 느낌이 다르다. 당시에는 파격적이고 직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방황하는 아가씨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실화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느 정도는 현실일 수도 있지만, 약간의 소설로서의 재미를 가미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하지만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충분히 이해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목표 의식’이라고 한다. 아마리는 ‘라스베이거스에 간다’는 단순하고 엉뚱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우연히 생겨난 목표가 인생을 바꿔놓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나 또한 즉흥적으로 생겨난 목표 덕분에 스물 아홉 살에 살아갈 의욕을 되찾았었다. 다른 사람이라고 그런 경험이 없을까?
아마리는 왜 그동안 한 번도 스스로를 위한 목표를 가지지 못했을까? 그 전에 아마리의 눈은 언제나 부모님, 남자친구, 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을 향해 있었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궁금해하고, 주변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도록 조심하곤 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산 결과는 오히려 불안한 현실로 이어져 버렸다. 도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처럼 소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어릴 적부터 그런 연습을 해보지 않은 아마리는 서른이 되어서야 그 연습을 마스터했다. 하지만 늦었다고 정말 늦은 것은 아니다. 여주인공이 서른 이후로 삶을 더욱 치열하게 살았던 것처럼, 서른이라도, 마흔이라도 언제든 스스로를 변화시킬 기회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