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코>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상황은 언제나 피하고 싶다. 어색한 회식 자리, 어려운 가족과의 상봉, 낯선 직장에서 면접 보기. 마치 타인이 나를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만 같다. 이럴 때 나의 사소한 결점 하나라도 떠오른다면 자신감을 몽땅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볼 때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코>라는 단편 소설이 떠오른다.
어느 마을, 큰 절의 주지승은 늘어지고 기다란 코 때문에 늘상 얼굴을 찌푸렸다. 눈에 띄는 코 때문에 주지승으로서의 체면이 안 섰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도 동자승이 옆에서 코를 막대로 받치고 있어야만 했다. 어느 날은 동자승이 실수를 하는 통에 코가 죽에 쏙 빠지고 말았다. 그 소문은 마을 사람들 귀에 들어갔으며 오랫동안 돌고 돌았다.
주지승은 결국 결단을 내린다. 코를 짧게 만들어 보리라 하고. 어느 의원을 만나고 온 한 젊은 스님이 그에게 방법을 일러준다. 뜨거운 물에 코를 삶은 뒤 힘껏 발로 밟으면 된다는 것. 꽤나 고된 이 과정을 거쳐 주지승은 결국 코를 짧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날부터 주지승은 자기 어린 스님들이 자기만 보면 ‘큭큭’ 웃는다고 생각되었다. 다른 마을 사무라이가 방문해도 자기 코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 동자승이 마당의 개를 보고, "코를 때려 버릴라!"하는 걸 듣고 그를 호되게 팬 적도 있었다. 이제 코 때문에 잠도 오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주지승은 잠에서 깨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고, 짧아졌던 코가 다시 기다란 코로 돌아왔다는 걸 알게 된다. 주지승은 그제야 눈을 감고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느낀다.
<코>의 노승은 자의식 과잉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남들에게 부끄러워 작게 만든 코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고 안도하다니 우스꽝스럽다. 영원한 진리를 탐구해야 할 주지승도 고작 코 하나 때문에 고민할 정도로 컴플렉스의 힘이 강력하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남들의 평가에 신경 안 쓰고 편안하게 사는 일이 이렇게 참 어렵다. 내가 좋은 일, 내가 입고 싶은 옷, 내가 하고 싶은 취미를 따르는 일도 어렵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코'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위선과 허례허식을 조롱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욕망은 그저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완벽한 허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은 뒤로 제쳐두고, 남이 원하는 생활방식과 성격마저 따라하다가 진짜 내 모습은 사라지는 것도 모르고. 그러다가 정작 남들이 나를 외면하게 되면, 나를 지킬 만한 신념의 무기는 온데간데 없다는 걸 확인할 지도 모른다.
흔히 자존심이 높고 허세가 가득한 사람에게 '콧대가 높다'라는 말을 쓴다. 얼굴의 중심에 위치하며 고개를 쳐들면 하늘 높이 올라가는 코. 내가 너무나도 원하는 사회적 역할을 대신 연기하는 코. 우리들 각자가 포기할 수 없는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