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된 연인

알랭 드 보통,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by LEAN
3240.jpg Marc Chagall, Birthday


요즘처럼 비혼이 증가하는 시대에는 결혼에 대한 낭만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결혼에 관한 에세이나 소설이 잘 팔리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결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결혼을 과연 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결혼하는 것보다 혼자 낫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도 살다보면 진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고 꼭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위험한 순간을 맞을 수도 있다. 결혼은 정말 미친짓일까? 결혼 후 행복하다는 사람은 다 어디에 있을까?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결혼한 커플이 싸우는 이유를 철학적으로 그리고 심리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라비와 커스틴은 다른 여느 커플처럼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라비는 커스틴이 지적이고 합리적인 여자라고 생각했다. 커스틴은 라비가 낭만적이고 섬세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장점이라 생각했던 것은 결혼 후에 끔찍한 단점이 되어 버린다. 머그컵을 사기 위해서 이케아에 들어간 이들은 엄청난 말다툼을 하고 나온다. '나는 미친 여자와 결혼했어!' 라비는 생각했다. 고작 머그컵 하나에 그렇게 싸우다니, 앞으로 평생 어떻게 살아나가지?


그들은 아이도 낳고 직장생활에서도 변화를 겪는다. 그렇지만 서로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커스틴은 밤에 창문을 활짝 열고 자고 싶어한다. 라비는 모든 창을 꽁꽁 닫아놓고 싶어한다. 커스틴은 어린시절에 겪은 압박적인 환경 때문에 창문을 여는 것을 좋아하고, 라비는 커스틴이 냉랭한 환경보다 정이 풍부한 가정 분위기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창을 닫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속사정을 모른다.


결국 라비는 커스틴의 냉랭함에 지쳐 출장에서 외도를 해버리고 만다. 단 하룻밤이었지만 라비는 조마조마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 기다린 것은 커스틴의 충격 고백이었다. 그녀의 회사에서 약간의 미묘한 기류가 흐를 뻔한 사이의 남자가 있었다는 것. 라비는 본인의 일은 싸그리 잊어버리고 커스틴의 다른 남자에 대해서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한다.


결국 그들은 결혼한 지 19년 만에 심리상담소를 찾는다. 라비와 커스틴은 결혼상담에 대해 그동안 우습게 생각했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가는데 그렇게 오래 걸렸던 것이다. 그들은 맞은 심리상담사는 라비가 겪은 강압적 교육 방법과 커스틴이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오랫동안 상처받았던 사실을 알려준다. 라비와 커스틴은 그제야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었으며 상대를 이해해 줄 준비가 되지 않았는지를 깨닫는다.






어떤 사람의 본모습을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화낼 때가 언젠지 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극도로 흥분하는 순간은 바로 본인의 결핍된 부분을 건드렸을 때라고 한다. 부부 사이에는 서로의 화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접하게 된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여러 가지 삶의 과업을 같이 해결해 나가기 때문이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심리학적으로는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부적절하게 심한 분노나 우울한 감정이 생겨날 수도 있다고 한다. 만약 부부가 서로 각자의 분노의 원인에 대해 터놓고 얘기한다면 적어도 상대방의 어두운 감정이 표출될 때마다 '속 좁은 사람'으로 폄하하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추운 것이 싫다. 자취할 때 내내 옥탑방에 살아서 추위에는 이골이 났기 때문이다' 처럼 말하는데도 굳이 창문을 억지로 열어놓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도 함께 대화할 때면 다른 사람의 뇌관을 건드리는 말은 절대 안 하는게 좋다고 한다. 누구나 남이 건드리면 터지는 분노의 버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남 사이에도 그런데 부부끼리 굳이 그 버튼을 눌러서 핵전쟁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부부끼리 싸움이 일어날 때도 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을 담은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얼마 전 법률스님 즉문즉설을 보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다. '부모님에게 실망이 커요.' 스님이 대답하셨다. '기대를 하니까 실망도 크지.' 결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을 선택할 때는 이전보다 나은 삶을 기대한다. 자신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다른 것에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모든 시도는 애초에 실망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은가? 큰 시험에 도전하든, 다른 사람과 협력하든, 새로운 사업을 벌이든 무조건 낙관적인 경우의 수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결혼도 이러한 수많은 모험 가운데 하나다.


The Promenade Marc Chagall.jpg Marc Chagall, The Promenade


어떤 한 가지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는 힘과 실망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서만큼은 유독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한다. 배우자는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욕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배우자의 인생에서는 내가 1순위가 아닐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생활을 바꿔놓을 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배우자는 나에게 무한정 사랑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한 배려와 상호 존중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다른 무언가를 성취하려 노력했던 때를 떠올리며, 결혼 상대에게도 조금만 더 관심과 애정을 베풀어 보면 어떨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름다움이 낳은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