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안톤 P. 체호프
중년의 불륜이라는 테마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런데, 불륜소설의 시작은 무엇일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은 이러한 장르의 원조 격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안톤 P. 체호프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정선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연애소설이기도 하다.
구로프는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바람둥이이다. 그는 지적이며 자신을 은근히 무시하고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않는 아내와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자들을 싸잡아 '저급한 인종'이라 부르며 비난한다. 하지만 여자가 없다면 인생의 재미가 없으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수작을 걸기 위해 세상 모든 여자들을 주시하며 눈과 귀를 열어둔 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구로프는 아내 없이 떠난 휴양지에서 개를 산책시키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한다. 하얀 원피스에 베레모를 쓰고 있는 키가 크지 않은, 그 여성의 이름은 안나였다. 수군거리기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라고 부른다. 구로프는 순진무구하지만 어딘가 우울한 기색을 품고 있는 안나에게 관심이 생긴다. 안나도 속이 뻔히 보이지만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지는 구로프를 밀치지 않는다. 구로프는 아내의 냉대에 이골이 나 있었고, 안나는 남편의 무미건조한 사랑에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다. 둘은 결국 휴양지에서 연인이 된다.
휴양지에서 짧은 연애를 마치고 구로프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나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너무 늦게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것이다. 하지만 주변 지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그들은 흘려들을 뿐이다. 구로프는 자신의 터전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안나를 되찾으려 무작정 그녀의 집에 찾아가는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될까?
체호프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쓴 시기는 작가 본인이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자신의 감정이 절절히 담겨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구로프는 안나를 보면서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몸의 세포가 살아 움직이는 듯 느껴지고, 연인과 만날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게 된다. 구로프는 사랑을 통해 삶에서 뒤늦게 의미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구로프의 사랑은 그의 지인들에게는 별것 아닌 해프닝에 불과할 뿐이다.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경험이지만, 남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사건이다. 함께 카드놀이하던 관리에게 참지 못하고 '사실은 얄타에서 예쁜 여자를 하나 만났네'라고 하자, 상대가 '맞아, 철갑상어 맛이 고약하더군'이라고 딴 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구로프는 고향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시한 유흥과 농담과 폭음으로 이어지는 사교 생활에 그는 질려버린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마음을 통할 만한 상대가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구로프는 삶의 의미이자 목표인 안나를 찾으러 떠난다. 안나는 자신이 속한 제도와 사회적 관습에 속박되었다는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상대였다. 결말에서 이들은 비밀스러운 만남을 지속하며 미래를 불안해한다. 일찍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해나가던 이들은 뒤늦게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한다. 그 깨달음이 너무 늦게 찾아왔기에 이들에게는 각종 고난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체호프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잘못된 사회상과 주체적 사랑에 대해 심도 있는 성찰을 담아내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사회적 관습에 따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삶의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가면을 쓴 사교 활동, 사랑 없는 결혼 생활, 무의미한 유흥의 반복이 과연 과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체호프는 사랑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