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간을 '호모 비아토르'라 불렀다. 이는 '여행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걸어가던 길 위에서 방황하고 넘어지기 마련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헤르만 헤세는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된다는 성장의 철학을 작품으로 담아내었다. 그의 <싯다르타>는 한 구도자의 일생을 통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의 과정을 보여준다.
* 스포일러 포함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고 명석한 두뇌를 지닌 싯다르타는 부모님과 지인들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고된 수도자의 길을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였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소중한 아들을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싯다르타는 밤새 아버지의 침실 곁에서 달빛을 받으며 정자세로 서서 염원하였고, 그의 아버지는 할 수 없이 그를 보내주었다.
처음에 싯다르타는 고행자의 무리인 사문들을 따랐다. 그들은 보름을 굶고도 견딜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고, 의식주의 욕망을 거스르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행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곁을 떠났다.
다음으로 싯다르타는 명성이 드높은 고타마 붓다의 설교를 들으러 갔다. 고타마는 오랜 내적 수련을 거쳐 성불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설교에도 한 가지 빈틈이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메우기 위해 자발적으로 속세로 들어간다.
세속적 세계에서 싯다르타는 기생 여인 카말라를 만나서 육체와 사랑의 환희에 대해 가르침을 받는다. 또한, 거상 카마스마비의 밑에서 상업을 배워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다. 훌륭한 집과 하인과 좋은 옷이 그를 맞이하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허무함으로 가득찼으며 오히려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만 커졌다. 싯다르타는 속물성을 경멸하기 위해 도박에 몰입하였다. 거금을 걸고, 잃고, 다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채무자를 닦달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결국 싯다르타는 쾌락에 의해 몸과 마음이 피로해졌음을 깨닫고 불현듯 소리없이 그 곳을 떠났다. 그리고 빈손으로 이전에 속세로 올 때 건넜던 강으로 돌아갔다. 싯다르타는 번민에 빠져 강을 바라보며 삶을 포기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강을 바라보던 그의 마음 깊은 곳에서 '옴'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세계를 관통하는 진리가 오직 하나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싯다르타는 나룻배의 뱃사공 바스데바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했다. 바스데바는 찬란한 미소를 띄고 그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전해 주었다. 싯다르타는 그의 곁에 머물기로 결심하고 그들은 함께 노를 젓는 사이가 되었다.
노인이 된 뱃사공 싯다르타는 우연히 카마르와 재회하였다. 그녀는 뱀에 물려 죽어가는 중에 근처 뱃사공의 오두막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어린 아들이 울고 있었다. 싯다르타는 그가 자신의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카마르가 죽은 뒤에도 아들을 최선을 다해서 키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들은 한번도 행복할 줄 몰랐고, 아버지를 배신하여 돈을 훔치고 강을 건너 영원히 떠나버렸다.
좌절하는 싯다르타에게 바스데바는 아들은 자신이 가야할 길로 간 것이라고 일깨워준다. 싯다르타는 그제서야 다른 인간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세속적 인간을 대하던 내적 오만함도 사라졌다. 그는 진정한 깨달음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제서야 뱃사공 바스데바는 기쁜 표정으로 그를 보며 광휘에 휩싸여 점차 사라졌다. 바스데바는 행복의 의미를 전하려고 싯다르타의 곁에 머물렀던 존재였다. 싯다르타는 이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괴로움을 이야기할 때 자신이 깨달은 바를 전해 주었다.
우리가 붓다(Buddha)라 부르는 성인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에서 고타마와 싯다르타를 분리하여 다른 인물로 설정하였다. 고타마는 수도 생활을 거쳐 성불을 이룬 자이고, 싯다르타는 세속과 자연 등 다양한 번민을 경험하고 해탈한 자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저마다 고통스러운 일들을 마주한다. 가족의 위기, 개인적인 목표의 좌절, 부성애와 모성애의 고통 등 숱하게 많은 어려움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극복의 방법은 제각각 다르다. 헤르만헤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성장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절제되고 경건한 수양을 통해, 어떤 이들은 세상과의 투쟁을 통해 성숙에 이르기도 한다.
싯다르타는 자신의 애인 카마르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고, 부성애라는 난관 앞에서 윤회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아들이 떠났을 때, 싯다르타는 자신도 아버지에게 뜻을 좇아 집을 떠나겠다고 말했으며, 아버지도 자신 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음과 이별, 자연과의 조우를 통해 그는 자연적 순리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싯다르타는 결말에 이르러 강을 바라보며 내면에서 울려퍼지는 진리의 소리를 듣게 되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싯다르타는 세속에서도, 성전에서도, 자연에서도 마음을 힘들게 하는 장애물을 마주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을 둘러싼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주 먼 길을 돌아온 후에 싯다르타는 번민에 찬 행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뱃사공이 되었고,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