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 을 보고
위대한 천재 화가들은 대체로 일찍 사망한다는 편견이 있지만, 뛰어난 예술가이면서도 의외로 100세가 가까이 장수한 화가가 있다. 바로 마르크 샤갈(Marc Chagall)이다.
샤갈은 19세기에 태어나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고 20세기까지 살았던 인물이었다. 1985년 신문에 그의 부고가 실렸을 때, 구독자들은 그 유명한 화가가 자신과 동시대 사람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인생은 소리없이 열정적으로 흘러갔다.
샤갈은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어린 시절 고향의 시골 마을에서 살던 추억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억을 모두 화폭에 옮겨 놓는 일을 수십 년 동안 이어갔다. 특히, 그의 작품 중 <나와 마을>은 특유의 신비롭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이러한 오랜 공헌과 열정을 인정받아 샤갈은 베네치아 비엔날레 판화 부문에서 대상을 받고, 프랑스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기도 했다.
샤갈의 그림을 보고 어떤 이들은 초현실주의의 선두주자라 평했지만, 정작본인은 자신의 작품은 전부 다 현실의 기억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상하는 이들이 느낀 것과 달리 그에게 고향의 풍경은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그림은 각각 정확하고도 명료한 한 편의 사진처럼 일련의 가슴 아린 추억들을 묘사하고 있었다.
샤갈의 어린시절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샤갈 러브 앤 라이프 展에서는 샤갈의 어린시절에 관한 비디오를 보여 준다. 영상에서는 샤갈이 어린시절 어떻게 미술가의 꿈을 꾸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샤갈은 어린 날의 어느 순간부터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화가였고, 앞으로도 영원히 화가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화가가 되겠어요.미술 학교를 보내주세요’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혀를 찼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얼른 부엌에서 비키라고 다그쳤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았다.
‘소가 자신을 소라고 인식하는 것 만큼, 내가 화가라는 사실은 당연한 것이었다.’
샤갈은 아버지의 달구지를 타고 가면서 하늘의 별들이 뿜어내는 장관을 지켜보았다. 꿈은 무럭무럭 자랐다. 샤갈의 가족 중에는 화가가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샤갈의 예술보다는 자신들이 다루는 소고기의 품질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샤갈의 어머니는 샤갈의 간곡한 부탁에 못이겨 그를 미술학교에 보내주었다. 샤갈은 떠나가서도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는 아홉 남매 중 장남이었고, 가족은 한 명이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 힘들 정도로 가난했다. 샤갈은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을 가슴 속에 묻고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다.
어릴 적 꿈을 성인이 되어서까지 밀고 나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명료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부모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그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샤갈은 반대를 이겨낼 정도로 자신에게 확신을 가졌다. 가족들은 그에게 ‘얘야, 너는 화가가 될 수 없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린 샤갈이 꿈을 접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그의 뛰어난 그림들을 접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샤갈은 가시밭길에서도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테마
샤갈은 젊은 시절 연애에서 또 한번 반대에 부딪힌다. 이번에는 벨라 로젠펠트라는 한 소녀의 부모님 때문이었다. 벨라와 샤갈은 첫 눈에 사랑에 빠졌다. 벨라는 샤갈이 ‘머리가 헝클어지고, 눈은 풀려 있으며, 어딘가 먼 곳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사람이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로젠펠트의 부모는 그 사랑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녀의 어머니는 샤갈의 그림에 볼을 붉게 칠한 인형 같은 얼굴의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사위가 너무나도 유약하고 초라한 사람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벨라는 부잣집 막내로 귀하게 키운 딸이었다. 그녀의 부모님이 결혼을 찬성했을리 없다. 하지만 샤갈과 벨라는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이르렀고 샤갈은 그녀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벨라는 샤갈의 뮤즈였다. 결혼 생활 당시 샤갈의 그림에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주를 이루었고, '생일'을 포함한 굵직한 걸작들이 이 즈음 탄생했다.
샤갈의 그림에는 하늘을 날아가는 연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환희와 기쁨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른 것이 틀림없다. 샤갈의 그림 중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사랑받은 여러 작품들은 주로 샤갈의 아내와 외동딸을 소재로 하고 있다. 벨라는 샤갈에게 크나큰 행복을 가져다 주었지만, 샤갈보다 40년 먼저 갑작스런 감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그리다
샤갈은 죽기 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나이가 너무 많이 들고 나서는 손목에 헝겊을 감아 붓을 묶어 팔을 움직였다. 관절에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손을 펼 수도 접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오로지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젤 앞으로 다가갔다. 70세가 넘어서도 4년에 걸쳐 가르니에 궁의 천장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큼직한 스테인드 글라스 연작을 기획했다. 샤갈은 한 사람의 예술가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자신의 소명을 알고 장인처럼 그 운명을 따라간 사람이었다.
샤갈의 그림에는 표현주의와 입체파와 초현실주의가 뒤섞인 듯하면서 그 어느 것과도 비슷하지 않은 독자적인 화풍이 존재했다. 그의 그림들은 어느 사조에 혁명을 일으키거나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지는 않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대신 그 작품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가난과 질병과 전쟁이 존재하는 현실 속에서도 가족애와 추억과 순수함에 대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샤갈의 그림을 접하는 이들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해학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어린시절 장면들이 한가득이었다. 염소와 양과 목동이 가득한 환상적인 풍경은 비슷한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그림은 인간애의 회복에 대한 소망을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