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흰색은 색이 없어서 안 좋아.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어요.

by 자별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18.png




5살 아이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

아이는 답했다.

"나는 흰색 빼고 다 좋아."

"왜? 흰색은 왜 안 좋아해?"

"응. 응 다른 색들은 알록달록 예쁜데, 흰색은 색이 없어서 안 좋아."


모든 색을 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아이가 흰색만은 싫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색이 '없어'보이니까.


흰색도 분명히 하나의 색이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는, 형형색색 자신만의 색을 뽐내고 있는 크레파스 사이에

껴있는 흰색이 존재감을 잃고 있었나 보다.

하얀 종이에 그리면 보이지 않으니, 없는 것처럼 느껴진 걸지도.








그 말은 들은 나는 조용히 아이와 미술 놀이를 준비했다.


아이에게 흰색 크레파스를 쥐어주고 말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려봐. 보여?"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말했다.

"아니. 하나도 안 보여!"


수채 물감을 준비했다.

나도 그림 하나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칠했다.

물감으로 덧칠하는 순간, 감쳐져 있던 흰색이 "뿅"하고 나타났다.

"우와~ 예쁘다"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자기도 해보겠다며 들뜬 목소리로 졸랐다.


신나게 물감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여기 흰색이 보이지?

흰색은 흰 종이에 그려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야. 흰색도 흰색만의 색이 있어."



"어때? 이제 흰색이 좋아졌어?"

아이는 손가락으로 손톱을 가리키며 말했다.

"응. 엄마. 흰색이 조금, 아주 조금... 손톱만큼 좋아졌어!"




KakaoTalk_20251013_140320216_01.jpg



흰색은 보이지 않았을 뿐 그 자리에 있었다.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자기만의 색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런 게 아닐까.


눈에 잘 띄는 모습만을 색이라고 여기고,

말없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들을 색이 없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어쩌면 아이가 말한 '없어 보이는 색'이

가장 단단한 색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색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을 느낀다.

눈에 띄는 성과도 없고, 대단한 무언가를 해내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를 잘 살아내기 위해 묵묵히 쌓고 있는 작은 습관들.


이 시간들이 흰색 크레파스 같진 않을까.






지금은 잘 보이지 않아도,

어떤 계절이 지나고, 어떤 물감이 덧칠되는 순간

내 안의 색이 문득 드러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만의 색을 잃지 않기로 한다.

그 색이 아직 보이지 않더라도.



"흰색은 색이 없어서 안 좋아."

아이의 그 말이,

"드러나지 않아 불안했던 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는 말해본다.


흰색도 색이에요.

그냥, 아직 눈에 띄지 않았을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