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무당벌레가 온 것 같아

감각의 언어를 다시 배우는 시간

by 자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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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발을 봤는데,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발톱이 벌써 길어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잘라주는 발톱인데도, 볼 때마다 자라 있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잘 먹는 만큼 발톱도 빨리 자라는 건가.


발톱을 잘라주려고 아이의 발을 살짝 만졌는데, 아이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엄마, 무당벌레가 온 것 같아."

"무당벌레?"

"엄마가 발가락을 만지는 게 간지러워서,

무당벌레가 내 발가락에 앉았다, 날아갔다

앉았다, 날아갔다 하는 것 같아."


아이의 표현에 내 마음마저 간지러워졌다.






무당벌레.

아주 작고, 부드러운 생명.

아이에게 무당벌레는 공원에서 만나는 특별한 친구이다.

무당벌레를 찾으면 한참이고 바라보다 포르르 날아가면 아쉬워하는 그런 존재.

그래서 더 귀하고, 예쁜 기억인 존재.


그 무당벌레를 엄마 손에 겹쳐 표현했다는 건,

어쩌면 기분 좋은 긴장감과 따뜻한 설렘,

그리고 사라질까 아쉬운 찰나의 느낌마저 담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간지러워'라는 말 대신 자신만의 언어로 감각을 표현했다.

그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아이의 감정, 감각, 상상이 결합된 순수한 언어였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의 표현은 단순해진다.

'간지러워', '기분 좋아', '따뜻해' 같은 말로 감각을 쉽게 뭉뚱그려 말하게 된다.

그러다 감정도 감각도 점점 무뎌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는 다르다. 지금 느껴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낌에 상상을 덧입혀 세상에 없던 표현으로 다시 만들어 낸다.

그 말은 새롭고 낯설지만 동시에 아주 정확하고 아름다운 표현이다.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세상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다.

그중에서도 감각의 언어는 내가 아이를 통해 다시 배우고 싶은 것 중 하나이다.

잊고 있던 촉감,

놓치고 있던 감정,

흘려보내던 순간들을 아이의 말처럼 다시 붙잡고 싶어진다.






이제 나도 아이의 발을 만질 때마다

작고 귀여운 무당벌레가 생각난다.

그 무당벌레가 아이의 기억 속에서 포근한 느낌으로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라며.

언젠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손길을 떠올릴 때,

그 기억이 가볍고,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감각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아이의 말 한마디가,

엄마의 손끝을 더 따뜻하게 만든다.

그 손끝의 온기가 한 마리 무당벌레처럼 아이의 기억 속을 날아다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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