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취향은 엄마의 세게에서 자란
아이와 누워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이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말했다.
"엄마, 머리 많이 길렀네?"
"응. 많이 자랐지."
매번 짧게 잘랐던 머리가 꽤 많이 길어졌다.
"근데, 풀잎반 선생님 머리가 더 길어."
"그래? 엄마도 선생님처럼 길었으면 좋겠어?'
"아니, 엄마는 어떤 머리를 해도 예뻐."
아이의 말에 괜히 뿌듯함을 느낄 무렵, 아이가 덧붙여 말했다.
"... 그런데 엄마, 머리 조금만 더 기르면 안 돼?"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다섯 살 아이에게도 ''취향'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긴 머리를 좋아한다고.
'이 꼬맹이도 남자이인가 보다' 싶으면서도,
아이 안에서 무언가를 구별하고 선택하는 마음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마냥 사랑스러웠다.
아이의 세상은 아직 단순하다.
좋고 싫음의 기준이 명확하고, 때로는 이유가 없을 때도 많다.
긴 머리, 짧은 머리.
봄, 겨울.
산, 바다.
앞으로 아이는 수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며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내가 묻어 있음을 느낀다.
아이가 좋아하는 '라이온킹'과 '넘버블럭스'도
나와 함께 보고 듣고 부르고, 웃었던 시간의 결과다.
아이 혼자서는 알 수 없는 노래,
혼자서 볼 수 없는 세상은 내가 보여주고 들려준 세계의 한 조각이다.
아이의 취향은 그렇게 관계 안에서 자란다.
엄마가 봄을 좋아하면, 아이도 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엄마가 꽃을 바라보며 "예쁘다"라고 말하면,
아이는 그 말을 기억하고 다음번 꽃을 볼 때 "예쁘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단순히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함'이 옮겨가는 일이다.
아이 스스로 세계를 완성하지 못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세계를 빌려 조금씩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에게 묻는다.
'내 세계는 어떤 느낌일까?'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어떤 색일까?'
내가 늘 지친 얼굴로 하루를 보낸다면,
아이는 '어른이 된다는 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반대로 내가 세상을 궁금해하고,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하루 한 번이라도 더 웃으며 '이거 참 좋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이는 그 말투와 표정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그때의 나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말하겠지.
"이거 참 좋다."
아이의 취향은 결국 '함께한 시간의 결과'다.
내가 걸어온 길, 내가 바라보는 풍경, 내가 즐기는 음악과 향기.
그 모든 것들이 조금씩 아이의 마음에 스며든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새싹이 흙을 뚫고 나올 때 나는 봄 내음, 여름 장마철 젖은 나무 냄새,
낙엽을 밟을 때 나는 바스락 소리, 눈이 쌓였을 때 제일 먼저 발자국을 남기는 즐거움.
그 속에서 자신만의 좋아함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 '좋아함'이 누군가를 닮아 있어도,
전혀 다른 글에서 자라난 것이어도 좋다.
중요한 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 마음.
그 마음이 아이를 아이답게 만들고,
결국 한 사람의 세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아이의 취향은 엄마의 세계에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의 세계를 단단히 가꾼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아이의 마음에도 사랑이 번져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