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라는 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난 봄의 일이었다.
"츄츄야. 주말에 벚꽃 보러 가려고 했는데 비가 온대.
비와서 꽃이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아쉽다."
아직 떨어지지도 않은 벚꽃을 상상하며,
아쉬운 마음을 말했더니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엄마, 벚꽃은 지금 보면 되지."
아이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나뭇가지마다 분홍빛 꽃잎이 바람에 살랑이고 있었다.
"봐. 저기 있는 벚꽃도 예쁘기만 하네. 저기도 있잖아.
예쁘다, 벚꽃!"
그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이 꽃처럼 환했다.
아이의 답은 제일 단순하고 정직했다.
어른들은 자주 무언가를 '놓칠까 봐' 걱정하고,
'더 좋은 순간'을 기다리느라 눈 앞에 펼쳐진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나도 그렇다.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내일 아침을 위한 장바구니를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면서 늘 '다음'을 생각했다.
아이는 이런 나를 가끔 멈춰 세운다.
그날도 그랬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꽃을 두고
아쉬움을 먼저 품었고, 예쁘게 피어 있는 현재를 보지 못했다.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이 자리를 가리켰다.
"지금이 예쁘다."
"지금 보면 되지."
아이에게는 예정된 주말보다 오늘 이 순간이 더 중요했고,
비가 올지 말지는 아직 오지 않은 일일 뿐이었다.
지금 눈앞에 피어 있는 벚꽃,
지금 함께 벚꽃을 보는 엄마,
지금 이 길에 부는 바람.
그 모든 순간이 아이에게는 충분했고, 소중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지금'을 보려고 애쓴다.
아이가 자라나는 새싹을 보며 멈춰설 때, 나도 함께 멈춘다.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 낙엽의 색을 구경할 때, 나도 함께 앉아서 바라본다.
아직도 나는 다음을 준비하느라
지금을 종종 놓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그저 고개를 올려 하늘을 보듯, 현재를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
아이의 손은 내 손바닥 만큼 작지만,
나보다 '지금'을 아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지금'을 배운다.
"봐, 예쁘다. 지금이 예쁘지."
아이의 그 말이, 봄처럼 따스하게 내 안에 오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