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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연 Mar 07. 2024

03. 언젠가는 무릎

워킹맘의 숨 쉴 시간, 달리기


"러닝화를 바꿔보면 어때요?"

"샘, 하지만 이 신발 아직 300km 정도만 달렸는데요."


러닝 전후 스트레칭을 꼼꼼히 하고 평소와 똑같은 자세로 달렸는데도 이상하게 무릎이 아팠던 때가 있었다. 별생각이 다 들었다. 정말 달리면 무릎이 나가는 걸까, 혹시 갱년기의 시작인가 등등의 다양한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그 고민을 얘기했더니, 샘은 내게 어떤 운동화를 신는지 물었다. 샘은 당시 온라인 영어클래스의 내 담당 원어민 선생님으로, 스포츠 전문 매장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고 마라톤에도 여러 차례 참가했다.


내 첫 러닝화는 나이* 페가수스였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마침 들어온 상품권이 있었던 지라, 매장에서 가장 무난해 보이는 러닝화를 골랐었다. 그런데 샘은 그 브랜드가 쿠션의 내구성이 약하니 러닝화를 바꾸어 보라고 권했다. 통상적으로 러닝화는 500km 내지 800km를 뛰면 교체한다. 내가 사용하던 런데이나 나이키 런클럽 앱의 러닝 기록을 합쳐봐도 채 400km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구입한 보조 러닝화도 나이*였으니, 신발을 바꾸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기도 했다. 에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기분 전환 한번 하자는 심정으로 가까운 아식* 풋아이디 매장에 갔다.


발 모양과 발목의 각도를 측정하여 가장 잘 맞는 운동화를 추천해 주는 러닝 전문점은 이외에도 더 있었다. ‘플릿 러너’, ‘러너스 클럽’이 대표적인데, 유료인 대신 더 자세히 발을 분석해 주고 측정 후 러닝화를 구매하면 신발 금액만 받는다고 하였다. 하지만 급하게 예약을 잡기는 어려웠던 데다 거리상 아* 풋아이디 매장이 가장 가깝기도 했다.


측정 결과, 나는 왼쪽 발목에 내전이 있어 이를 잡아주는 안정화인 젤 카야노를 추천받았다. 워낙 유명한 안정화여서 내 기준 15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크게 고민하지 않 구입을 결정했다.  


남편은 내가 달리기를 시작할 당시 장비빨부터 세운 다음, 금세 접을까 걱정을 했었다. 내가 생각보다 오래 2년쯤 버티자 이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흰색과 민트색이 섞인 상큼한 러닝화를 골라 선물해 주었다.


새 신발을 들고 집에 오니 은근히 마음이 일렁거렸다. 옷은 작업복 사듯 의무감에 사면서 새 러닝화에는 이렇게 설레하냐며 남편은 이제 내가 진짜 러너 같다고 웃었다.


집에 오자마자 온몸을 풀고 난 뒤 무릎 보호대를 야무지게 하고 새 러닝화에 희망을 실어 한강으로 달려갔다. 무릎이 다시 아프면 어쩌나 불안한 마음도 반쯤 있었지만, 샘을 믿어보기로 했다. 가볍게 5km를 달려보았는데, 정말이지 다음날까지 무릎이 아프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전주에 사는 샘이 영어수업을 하다가 서울에 있는 내 달리기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남쪽에서 귀인이 나타난 셈이었다.


다음 수업에서 정말 운동화를 바꿔서 효과가 있었다고 피드백을 해주었더니, 샘은 그 브랜드 러닝화가 대체로 족형이 좁게 나오는 편이라 초보자에게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확실히 나는 발 볼이 넓은 타입이었다. 러닝화에 대한 많은 정보가 인터넷에 있었지만 내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보다 일단 시작하는 게 급했던 것 같다.


지인들 중에 러닝을 시작했다가 무릎이 아파 그만둔 엄마들이 꽤 많다. 사보에서 달리기에 대해 쓴 내 글을 보고 러닝을 시작한 수진 언니도 무릎이 아파서 나에게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나는 첫째 평소에 올바른 자세로 천천히 달리고, 둘째 무릎 보호대를 꼭 하며, 셋째, 러닝 전후 스트레칭을 정성 들여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특히 러닝 후에 폼롤러를 이용해서 하체 전체를 풀어주어야 하는데, 무릎 주변뿐만 아니라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근막을 다스려 주면 무릎이 아플 일은 없을 거라고 얘기했었다. 내가 무릎이 아프기 전까지는 다 맞는 말이었다.


가끔 해결책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기도 하다. 나는 무릎이 아프면 하체 전체의 근육을 풀어줘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대수명이 다하지 않은 러닝화를 바꿔본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게 나의 관리 소홀로 인한 것인지 특정 브랜드에 나타나는 경향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이걸 수진 언니가 무릎 때문에 달리기를 그만두기 전에 알았더라면 한 번쯤 점검해 줄 만한 포인트가 됐을 거다.


물론 무릎이 아픈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러닝 자세나 착지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각자의 체중, 러닝 주기와 강도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다음번에 무릎이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는 상담이 있다면 몇 킬로를 달렸는지, 어떤 브랜드를 신는지 체크해 보고, 발에 맞춰 러닝화를 사라고 해봐야겠다. 그럼 내게 도움을 청한 사람 중에 누군가는 "결국 달리기를 그만두었다"를 "까딱하면 그만 둘 뻔했다“로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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