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유구한 역사의 서울권 골목 시장, 오류버들상권
새로움을 뜻하는 '뉴(New)'와 오래된 양식을 칭하는 '레트로(Retro)'의 결합어인 ‘뉴트로’ 는 2019년도 대한민국 대표 신조어로 등극한 이래 현재까지도 유효한 소비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신(新)복고'에 열광할까요?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레트로 감성을 추구하고 자발적으로 공유하는 이유를 "옛것을 새로움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 설명한 바 있습니다. MZ세대는 주변의 새로운 콘텐츠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데서 재미를 느끼며, "옛 감성이 느껴지는 장소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활동들"을 공유하는 것은 그러한 재미를 충족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세대가 뉴트로 감성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면서 오히려 "옛것"을 흥미로운 모습으로 보여주고 체험시킬 수 있는 오래된 장소들이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MZ세대는 가치와 재미가 있는 장소 방문 인증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고,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또래가 더 많이 그 장소를 찾았으면 하고 독려하기도 합니다. 뉴트로 장소들이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 등 SNS에 방문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지는)"한 공간 자원으로 새롭게 떠오르게 된 이유입니다. 앞서 이승윤 교수 역시 “옛것과 옛 문화가 소구력을 지니는 이유로 인스타그래머블한 콘텐츠로 브랜딩이 가능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잠시 도시재생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도시가 발전을 거듭하며 쇠퇴하는 구역들이 생겼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골목과 동네를 경제적, 사회적으로 보다 활력 있는 장소로 만들 필요성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에 도시의 고유한 모습을 보존하면서도 쇠락의 그래프를 반전하기 위한 도시재생은 2010년대 초반부터 국정 과제로 추구되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마중물 사업으로, 골목 시장 등 많은 옛장소들이 신식화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한 때 낡고 허전했던 옛장소에 사람들이 끌림과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기엔 한계가 있었습니다. 매력 있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재미와 감성이 필요했죠.
이러한 점에서 "로컬 브랜딩"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로컬이란 주민들의 소비 권역과 인적 교류 등 생활양식이 유사하게 나타나는 지역사회 특색 기반의 삶의 터전 정도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오래된 지역 특유의 감성을 지닌 거리와 시장, 저층 주거지들에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에서 번쩍번쩍한 계획 시설물과는 다른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요. 많은 요즘 세대들이 근사한 호텔 라운지 대신 오래된 골목이나 시장에서 친구들과 주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로컬은 쇠퇴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도시재생의 성공 키워드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새 정부에서도 2022년 도시재생 사업 계획을 재정비하면서, 지역특화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로컬 특화 상권의 부흥을 지원하기 시작했지요. 특색 있는 거리 분위기나 유일무이한 전통으로 방문객을 유치할 수 있는 레트로 상권들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옛것을 보존하면서도, 요즘 것들을 유치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지역 주민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요.
구로구에 위치한 오류동 버들시장은 그러한 지역특화재생의 한 사례입니다. 2022년 시행된 지역특화재생 사업 중, 오래된 골목상권의 재브랜딩을 통해 지역 전반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로컬 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이 있었습니다. 오류버들시장은 해당 로컬 브랜드 상권 육성 서울 지역 사업지로 선정되었으며 로컬 관점에서의 리브랜딩을 꿈꾸고 있는 곳입니다.
동일한 상권 육성사업에 선정된 양재동 카페거리 등에 비하면 오류버들시장 했을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시민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서울 토박이인 서은도, 골목시장 전문 사진사인 승훈도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생경한 구역이었습니다. 재개발을 둘러싼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마중물 사업이 여러 차례 무산되었고, 상인들이 떠나고 흉물로 전락했다는 기사들을 접했습니다. 두 작가는 이러한 자료들의 열람으로 만족하는 대신 직접 방문하면서 무엇이 이 지역을 로컬 브랜딩 특화 상권으로 뽑히게 만들었을지를 느끼고 기록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렇게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찾은 오류동 버들시장은 생기가 넘치는 매력적인 장소였습니다. 소위 "핵인싸 맛집" 같은 곳들보다는, 마을 주민들과 오래 소통하며 자리 잡은 듯한 식당들이 시장 구석구석 정겹게 자리 잡은 풍경이 퍽 정겨웠습니다. 지역 상인들께서도 촬영에 호의적으로 응해주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숨기거나 감추지 않고 카메라 앞에 담길 수 있는 지역 주체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역주민 모델 사진으로 전국 로컬 매거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서은이 즉석 "로컬 모델"이 되어 뉴트로 골목 스냅 전문 승훈 작가와 오류골목시장 화보를 담아 보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골목 시장을 찍은 승훈이지만 오류동 골목시장에 대해서는 예술 화보 잠재력이 있는 장소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침 방문 당일 굵직하게 내린 장대비가 버들시장 일대를 더욱 명화 같은 그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역사를 찾아보면 오류버들시장은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으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오류동의 흉물이라는 악명과는 다르게, 이곳을 찾는 주민들도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생동감이 넘쳤고 궂은비에도 평일에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많았습니다. 멈춰있는, 죽은 상권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오류동 버들시장의 신선한 식재료들을 활용한 밀키트를 판매하는 커뮤니티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승훈과 서은이 방문 당시 구경했던 싱싱한 청과들이 떠오릅니다. 아무래도 또 놀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생사진을 찍기 위해 소위 검증된 "핫플"에 가는 것도 좋지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이 벌어지는 생활권을 배경으로 한 스냅사진은 내가 살아가는 서울 내 동네들의 재발견에 큰 도움이 됩니다. 별 일 없이 지나쳐 왔던 동네 상권의 분위기와 사람들 간의 관계맺음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공간에 매력을 만드는 것은 값비싼 시설물 투자보다도, 거리를 걷고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며, 물건을 사고, 호기심과 관심 어린 시선으로 주변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출사를 나가면 각종 촬영 스팟들이 즐비한 대형 카페보다도,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대로의 삶의 현장에서 오히려 바쁘게 셔터가 터져 나오곤 합니다. 사진을 보면서 "이게 내가 알던 그 낡은 시장 거리가 맞아? 이렇게 힙한 곳이었어?" 하는 탄성도 함께 터져 나오는 건 덤입니다. 사진예술은 분명히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는 로컬 브랜딩 콘텐츠입니다. 주민이 참여하여 지역의 정체성과 팬덤을 형성하는 로컬 재생을 지향하는 로컬인사가, 서울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흉물로 변한 오류시장…주민도, 상인도, 손님도 떠났다[현장르포]
글, 사진: 곽승훈 (로컬인사 포토그래퍼), 전서은 (로컬인사 대표) / 사진: 곽승훈
로컬인사는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문화예술 아카이빙 기업입니다. (인스타그램 @local.i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