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10년 차 분노로 시작한 재린이의 경제적 자유 달성일지 #20
국토대장정이 있다면 바로 이런 걸까?
나는 어디를 싸돌아다니는 것을 안 좋아한다.
지금은 하도 사무실에 앉아 있어서 산책하는 것도 좋고, 집 앞에 마실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전에는 이 모든 것을 안 좋아했다. 대학생 때 세상에서 가장 신기하면서도 미스터리 한 사람들 중 하나가 <국토대장정>에 자의로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땡볕에 힘들게 국토대장정을 한다고? 비를 뚫고 물을 연거푸 마시며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도착지를 위해 나서는 이들이 대단하면서도 나와는 다른 외게 세계의 이야기라고 여겼다.
문제는 임장이 내게 그러했다. 돈은 벌어야 했고, 내 집은 갖고 싶고, 부동산은 아무것도 모르겠고, 남편은 당장 관심 없고 이러다 보니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다고?!
뒤쳐지는 나와 일부 동료들을 배려해 주시는 다른 분들께도 감사했다. 다만 무언가 자꾸만 눈치가 보였다.
심지어 내 옆에서 힘들어하는 분께서 갑자기 식사 후, 에너지를 얻으셨는지 아니면 나보다 몇 살이라도 더 어려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갑자기 "감잡았어"하면서 날아다녔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싶었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나와 함께 뒤처지는 멤버로 '함께 힘내자. 잘해보자.'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던 그분은 어느새 나와는 다른 그룹이 된 것처럼 앞서가는 그룹 멤버들에 합세했다. 마치 나와는 함께하지도 않은 것 마냥, 마치 나와는 처음부터 만난 적도 없는 것 마냥 사라졌다. (하핫) 멀리서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며 사라진 그분을 보면서 '젊은 게 좋은 건가?' 싶으면서도 얼마 전까지 함께 뒤처지는 그룹에 있었다가 갑자기 돌변하여 우리를 안쓰럽게 보는 모습, 선두그룹에 진입한 자신이 뿌듯한지 우월한 느낌을 잔뜩 뿜어내는 그분의 모습에 더 현타가 심하게 왔다.
국토대장정이 있다면 이런 걸까?
단지 부동산 공부를 하려고 왔을 뿐인데 그곳에서도 우월 그룹과 뒤쳐지는 그룹으로 나뉘는 현실에
'어디서든 계급화는 일어나는구나.'싶었다.
난생처음 하루 5만보를 걸어보다!
결국 잘 걷는 열정 그룹은 앞서나가고, 더딘 그룹과 이들과 함께 하는 일부 사람들이 나눠 걷기 시작했다.
사실 힘들면 멈춰서도 됐다. 지금 같으면 이렇게 함께 다니지도 않았겠지만, 힘들면 "저는 피곤해서 여기까지만 보고 먼저 가겠습니다." 하며 사라졌을 것이다. 내가 필요한 건 다 봤으니 쿨하게 떠나도 되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고, 나는 계속 걸었다. 다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무릎이 아프면서도 잠깐 5분만 쉬다가 눈치 보고 걸었고 또 힘들면 커피를 수혈해 가며 그렇게 걸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걷다 보니 하루 5만 보가 찍혔다. 그렇게 선두 그룹들이 본 곳을 나도 다 봤다.
나 또한 알 수 없는 자격지심 때문에서인지 어떻게든 다 보게 됐다. 물론 그 과정에서 더딘 나와 함께 해줬던 그룹 사람들과 더 빨리 갈 수 있음에도 자신의 시간을 희생해 준 따뜻한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아직 세상은 따뜻한 건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줬던 그분들께 감사했다. 그분들께는 나중에 따로 집에 가서 약소하나 감사의 기프티콘으로 마음을 전했다.
(그렇다고 먼저 선두그룹에 간 분들을 절대 비난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주말에 각자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저 조금 뒤처지는 우리를 보며 어차피 나중에 따로 갈 거면서 눈치를 지나치게 주거나 무시하는 듯하게 행동했던 1~2명의 사람 때문에 서운했던 것이다.)
나는 왜 그토록 걸었을까?
사람이 잘 못 걸을 수도 있지 왜 나는 그 순간 자격지심을 느꼈을까?
학교 공부도, 회사 일도 척척 잘 해냈던 나는 왜 좀 못 걷는다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꼈을까?
부동산 공부를 하러 가서 참 알 수 없는 별의별 감정을 느꼈다.
평소 하루 1만 보도 걷지 않던 내가 난생처음 하루 5만보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 함께 오늘 본 지역을 이야기하며 잘 걷는 선두그룹에게 물은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 걸을 수 있을까요?"
"평소에 하루 1만 보씩 걷기 연습을 하세요."
친절한 답변을 받았다. 다만 돌이켜보면 이게 과연 부동산 공부를 위해 내가 물어야 할 질문인가 싶기도 하다.
발에 느낌이 없는 건 왜일까?
평소 잘 안 걷던 사람이 갑자기 하루 5만보를 걸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는가?
일단 걷는 과정에서는 어떻게든 걸어지긴 한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목이 휘청하고, 무릎이
후들후들 거리지만 어떻게든 걷긴 걷는다.
문제는 그 이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평소면 역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몇 배는 더 걸렸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 아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내 발이 내 발이 아닌 것 같다. 발에 점점 느낌이 없어진다.
생각해 보니 남편과도 화해를 해야 한다. 남편과 화해하는 방법 중 하나가 남편이 좋아하는 오징어를 구매해 사들고 가는 것이다. 편의점 오징어는 비싸다. 가격도 7~8천 원이나 해서 남편도 자주 사 먹지 못한다.
내가 주말에 자기와 안 놀아주고 나간 것을 서운해하는 남편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을 먼저 들렀다.
오징어 주제에 엄청 비싸다.
오징어 사러 계산대로 가는 길이 왜 이렇게 먼 걸까?
집으로 가는 길은 더 멀다. 만리장성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었다.
오징어 들고 오열한 사연
그렇게 집으로 들어섰다. 들어서면 좋은 말 못 들을 것 같다.
또 나한테 핀잔을 줄 남편이 보였다.
억울했다.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이는 느낌이었다.
잘 좀 살아보고 싶었다. 잘 살아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평일에는 회사에서 치열하게 살고, 주말에는 공부한다고 치열하게 살았다.
그런데 남편한테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거기서는 잘 못 걸어서 열등생이 된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남편과 화해하겠다고 아픈 발을 이끌고 오징어까지 샀다.
집으로 들어오니 남편이 짜증 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오징어를 내밀었다. 그러자 희미하게 살짝 미소를 띠기 시작한다.
이 오만가지 상황에서 수백만 가지의 감정이 쏟아졌다.
그렇게 나는 주저앉으며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성인이 돼서 이토록 운 적이 있었을까?
하도 눈물이 많이 흘러 내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도 흐릿하게나마 갑자기 우는 내 모습을 보며 당황해하던 남편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를 달래기 위해 오징어를 가지고, 장난치는 남편 모습도 떠오른다.
"내가 뭘 그렇제 잘못했어. 난 좀 잘 살아보려고 한 건데.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이 말은 남편을 향한 말이기도 했지만 내 삶을 향한 말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펑펑 울었다.
옆 집 사람은 '저 집은 부부싸움하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 날의 일은 평생의 내 뇌리에 박혔다.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며 그토록 울어봤던 적은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