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6
지겹도록 나오는 '수능 다시 치는 꿈'
나는 꿈 부자다. 꿈을 워낙 많이 꿔서 이제 놀랍지도 않다.
가끔 꿈에서 여러 스토리를 대놓고 알려주기 때문에 그걸 잘 적어두고 소설로도 옮겨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중 내가 자주 꾸는 꿈 2가지가 있다.
평소 스트레스 지수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이 가능한 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수능 다시 치는 꿈>이다.
수능 다시 치는 꿈을 사람이 꾸고 나면 자고 일어나도 썩 개운하지가 않다.
이미 직장인인데 왜 이런 꿈을 꾸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내가 요새 스트레스를 좀 많이 받고 있나.'하고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일 뿐이다. (안 받아들이면 어떡할 건데... 황당한 꿈일세!)
재밌는 건 이런 꿈을 나만 꾸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능 시즌이 다가와 주변 동료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서로 알게 됐다.
저는 매번 수능 때만 되면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마음이 심란해요. 게다가 가끔 수능 다시 치는 꿈도 꾼다니까요!
저도 그래요. 저도 가끔 수능 다시 꾸는 꿈을 꿔요!.
직장동료도 수능 다시 보는 꿈을 꾼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반가움이란 마치 '너도 거기 여행 간 적 있다고. 거기 어땠어?'라고 말하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다만 그곳이 실존하는 여행지가 아닌 각자의 꿈속 세계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도 수능을 본 지가 10년도 더 지났음에도 나는 수능 다시 보는 꿈을 종종 꿨다.
이런 꿈들은 스토리도 몇 가지 변형형으로 출제된다.
1. 내신 수행평가로 미술 그림을 제출해야 하는데 나 혼자 그림을 하나도 안 그린 멘붕 상태
2. 수학 숙제를 선생님이 앞줄부터 확인하고 있는데 뒤에 앉아서 급하게 하고 있는 절박함
3. 수능 모의고사를 쳐야 하는데 지금 내가 그걸 기억이나 하겠냐?
잠이라도 편하게 자야 하는데 이런 골 때리는 상황들이 나오다 보니 환장하고 돌아버릴 노릇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많이 발전했다. 하도 이런 꿈을 많이 꾸다 보니 아주 조금은 자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꿈에서 이런 말도 한다.
"수능 성적이 00 대학보다 안 나오면 나는 굳이 대학 안 갈 거야. 이미 00 대학은 갔거든.(말이야 빵구야)."
참고로 00 대학은 내가 나온 대학이다. 그 대학보다 높지 않은 이상 나는 굳이 대학을 갈 생각이 없다는 말이다. 자각을 하긴 했는데 다 한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닌 상태까지 올라왔다.
다행히 대학을 나온 건 기억하고 있어서 마음은 전보다 편해졌다. ^^
이 꿈은 평생 꾸고 싶어!
내가 이런 꿈을 꾸는 이유에 대해 잠시 고민해 봤다.
꿈은 나의 내면의 잠재의식을 반영한다고 하니까, 진짜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가 수능 공부에 열의와 애정을 담아서 그때 더 열심히 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꿈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때로 돌아가면 조금 더 노력할걸! 조금 더 애쓸걸!' 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고 그냥 결론 내렸다.
앞에서 언급했던 자주 꾸는 꿈 중 또 다른 하나는 나의 어린 시절 꿈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이었쯤이었던 아주 어린 시절인 것 같다.
수능 보는 꿈만큼 자주 나오지는 않지만 간혹 내 꿈에 등장한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지방 구축 빌라 2층에 거주했다. 집이 작았지만 방은 2개나 있었다.
한 곳은 안방, 한 곳은 내 방이었다. 어린 동생과 나는 겁이 많아 엄마 아빠와 같이 종종 잤는데
안방에서 엄마, 아빠, 나, 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서 딱 붙어서 잠을 자고는 했다.
그 좁은 곳에서 어떻게 다 같이 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억이 내게는 제법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그 뒤로 우리는 더 이상 다 같이 자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 이후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늦게 집에 돌아오셨고 나도 동생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자만의 방에서 각자 알아서 잠들었다. 여전히 사이가 좋은 가족이었지만 동생과 나 모두 서울로 상경했고 1년에 많이 만나야 2~3번 정도 집에 내려가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됐다.
가끔 부모님을 뵈러 가면 역까지 마중 나오신다. 1년에 몇 번 안 보게 되면 그 사이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의 얼굴이 더 명료하게 보인다. 내가 나이 든 건 생각 못하고 부모님이 나이 든 것만 보인다.
엄마, 아빠도 이제 60대 중반이 되셨다. 환갑이 어딜 감히 노인이냐고 하겠지만 젊고 예뻤던 부모님도 나이 드는 모습을 보니 세월이 야속해서인지 가끔 눈물이 핑 돌 때가 있다.
"얼른 자야지. 일찍 일찍 자야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젊은 엄마와 아빠를 보면 좋다. 그냥 기분이 좋다.
나도 어리고, 엄마 아빠도 어리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더 많다고 느껴져 기분이 더 좋아진다.
아마 나는 이 꿈을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30년 뒤에도 꿀 것 같다.
수능 다시 보는 꿈은 다시는 안 꾸고 싶지만 이 꿈은 평생 꾸고 싶다.
엄마 아빠를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아주 오래 보고 싶다.
나이는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멋진 미소로 나를 반겨주는 지금의 모습으로도,
요령은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많은 걸 주고 싶어 했던 젊은 시절의 그 모습으로도,
함께 하고 싶다. 이왕 꿈을 많이 꾼다면 이 꿈만은 앗아가지 말아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