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 인생 아는 척하는 에세이 #5
인생 짧다, 인생 즐기고 살아라!
시부모님을 방문했다. 시부모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내 자랑이라고 생각하여 '내가 평소에 얼마나 아껴 쓰는지, 절약을 위해 무엇을 하는지' 등 각종
쓸데없는 소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불쌍한 척과 약간의 자랑스러운 척을 섞어가며 대화주제로 꺼낸 것이다.
시부모님도 워낙 절약하시는 분들이셔서 그런 화제를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님과 하하 호호 웃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어머님께서 이런 말씀을 꺼내셨다.
아껴 쓰는 것도 좋지만 인생 짧으니까
조금 더 즐기면서 살렴
그 말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띵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절약하면서 사는 삶이 아련해 보였나 싶어 서둘러 '평소에 아껴 쓴 돈으로 친구들과 호캉스를 가기로 했다느니, 남편과 데이트도 종종 한다느니.' 하며 에둘러댔다. 어머님의 '그럼 다행이고.'라는 대화를 끝으로 그 주제가 얼추 마무리 됐다.
다만 '남들 눈에는 내 삶이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로 내게는 <인생을 즐기며 사는 방법>이 도대체 뭘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도대체 뭘까
나의 짠순이 삶은 확실히 <인생을 즐기는 방법> 과는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다.
평소에는 짠순이의 삶을 살고 있지만 쓸 때는 또 쓴다. 이태원의 핫한 화덕피자집에 들러 그날만 남편과 5만 원이나 넘게 긁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지인 결혼식을 위해 거금을 틀어 나를 위한 비싼 코트를 하나 산 것도 모르실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철저한 예산 계산 하에 집행된 지출이었으니까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매일이 집-회사-집-회사가 반복되는 나에게 도대체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방법'이 무엇일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성향상 모르면 물어보는 스타일이라 주변 지인들에게 이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친한 동료와 친구들에게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대답의 종류는 간단했다.
<돌아온 대답>
1.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겠다.
2. 돈이 있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
3. 직장인이 이게 가능한가?
크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불현듯 두려워졌다.
'인생은 짦은데 나만 제대로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게 아닐까? 잘 즐기고 있는 걸까?'
쓸데없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 그다지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으니까. 그때 이후로 며칠을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만의 생각을 정리해 봤다.
삶, 그 자체를 즐기기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란 개개인마다 너무나도 상이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지인들과 매일 시간을 보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원하는 명품가방을
사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니 참고만 하면 좋겠다.
SNS에 매일 올라오는 <수많은 해외여행, 수많은 호캉스와 오마카세> 등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 것들이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라면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이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전세게적으로 1%에 불과하다. 이런 삶도 인생을 즐기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조금 더 찾고 싶었다.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
내가 즐거워했던 시간들을 곰곰이 떠올렸다.
'지금 순간이 행복하다.'라고 느끼는 것이 인생을 즐기는 시간이라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1. 봄에는 벚꽃을 보러 가기
2. 여름에는 시원한 바다 혹은 수영장에서 여름을 만끽하기 / 여름 향기 만끽하기
3. 가을에는 단풍을 보러 가기 / 시원한 가을바람 즐기기
4. 겨울에는 눈썰매를 타러 가기
5. 각 계절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 즐기기 (빙수, 아이스크림, 붕어빵, 찐빵)
온전히 계절감을 느꼈던 시간. 그 시간이 기억났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에 한 번씩만 오는 계절을 마주하고 경험하고 즐긴 후 보내줬던 시간들.
내가 인생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 중 하나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내는 나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방법도 생각했다. 집과 직장을 전전하는 직장인이기에 따분한 루틴 속에서도 인생을 즐길만한 소소한 방법을 고안해 냈다.
1. 점심은 맛있는 메뉴 먹기
2. 좋아하는 동료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식사하기
3. 사랑하는 가족들과 여행 가기
4.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적당한 가격의 예쁜 옷 1~2벌 사기
약간의 돈을 투자하더라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를 기쁘게 하는 일들을 하나씩 추가했다.
사람마다 다르기에 본인만의 기쁨이 있으면 추가해도 좋겠다.
아직 나는 인생을 온전히 즐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지금도 찾아가고 있다.
30년을 살았음에도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들이 한 다발이다.
다만 딱 한 가지는 안다.
지금의 30대는 몇 년 후 40대로 넘어간다.
40대의 페이지는 어느 순간 끝이 날 것이고 50대의 새로운 챕터를 열 것이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나의 삶은 생각보다 짧고 유한하다.
순간순간 내 삶의 한 페이지, 페이지를 느끼고 즐기고 사랑해 주는 것.
그것이 인생을 즐기는 일이 아닐까?